[양봉진 저널] 한미 FTA 폐기론의 천박성
미국 백악관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논의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한국과 미국의 긴밀한 관계가 FTA 논의의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고 말해 한·미 FTA 문제가 수면 위로 다시 부상했다. 한국도 지지 않으려는 듯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폐기도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언급하자 일부 언론들은 ‘돌출발언’이라고 보도했다.

과연 돌출발언이었을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반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 장관의 “폐기 검토”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박(?)을 냉큼 받아먹고 싶은 문재인 정부 내 일부의 속내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미 FTA는 민주당이 목숨을 건 듯 반대하던 협정이었기 때문이다. 한·미 FTA를 일본의 한반도 식민통치를 열어준 을사늑약에 빗대던 인물은 다름 아닌 정동영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 김선동 통진당 의원은 한술 더 떠 최루탄까지 투척하며 반대한 협정이다. 불공정한 협정이었다고 미국이 먼저 재협상을 들고나온 지금, 두 의원은 물론 민주당은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미 양국의 볼썽사나운 ‘기(氣) 싸움’은 18세기 스코틀랜드 버클루 공작과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떠오르게 한다. 버클루 공작은 스미스를 가정교사로 맞아들이며, 그 대가로 매년 300파운드씩 ‘평생’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글래스고대의 도덕철학 교수였던 스미스는 이로써 버클루 공작의 스승이자 고문이며 평생 말벗이 됐다. 스승을 존경했던 버클루 공작은 스미스 교수를 에든버러 관세청장에 오르게까지 해줬다. 그 결과 스미스는 관세청에서도 600파운드의 연봉을 받게 됐다. 그러자 스미스는 버클루에게 가정교사 보수 300파운드는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대한 버클루 공작의 반응이 이채롭다. “스승님은 스스로의 명예만 생각할 뿐 내 명예는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스승·제자 고용계약과 관세청장직은 별개라는 게 버클루의 생각이었다. 버클루 공작이 당초 약속대로 300파운드를 스미스가 죽을 때까지 매년 지급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진정한 의미의 영국 신사도와 계약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대목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협정을 체결했다. 김영삼 정권이 서명한 구제금융협정을 이어받은 김대중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재협상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협상에 따른 후유증을 인식한 김대중 대통령은 없던 일로 거둬들였다. 재협상은 거론하지 않은 것만 못한 일이었다.

어느 계약이건 서명 전후 말이 달라지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계약은 자존심, 신의, 그리고 신사도의 표현 그 자체다. 지킬 자신이 없는 계약에는 서명하지 말아야 하며, 일단 서명한 계약은 어떤 불이익이 있더라도 계약종료 때까지 존중할 줄 아는 것이 계약문화의 본질이자 문명사회를 받쳐주는 뼈대다.

버클루 공작이라면 트럼프의 재협상 제기에 뭐라고 했을까? 신성한 계약사회의 이방인으로 간주하며 트럼프를 천박하다고 평가했을지 모른다. ‘미국 우선주의’와 ‘신(新)보호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세상은 주판알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한·미 FT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함께 자존심 강한 미국과 미국인의 품위와 국격(國格)을 시험하는 문제가 돼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도 곧바로 “해 볼 테면 해 봐라. 우리도 폐기할 수 있다”고 치받는 것은 현명한 대응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머리에 이고 트럼프와 이인삼각(二人三脚)을 이어 가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트위터를 통한 트럼프의 발언이 즉흥적이며, 휘발성과 불가측적인 점을 감안, 대놓고 어깃장을 놓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언제나 싸움에서 지는 것은 흥분하는 쪽이다.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