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지펠 vs 디오스, 브랜드 대결의 시대는 갔다
2000년대 초반. 지금은 어느 집에나 있지만, 당시 가전업계에서는 '양문형 냉장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시에 삼성전자는 '지펠', LG전자는 '디오스'를 간판 브랜드로 밀면서 경쟁이 한창이었다. 광고에는 회사명이 나오지도 않았고 브랜드만 등장했다. 가전양판점에서 소비자들은 어느 회사인지도 모르고 브랜드로 외우고 사는 경우도 많았다.

소비자들은 외국 가전에서나 보던 양문형 냉장고를 갖고 싶어했다. 시장은 매년 20% 이상씩 성장했다. 고급 이미지가 추가되면서 모델로 기용한 여배우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배우 김남주에 이어 이영애가 지펠 모델이 되면서 모델료로 4억원을 넘게 받았다. 디오스는 심은하가 대체 불가능한 모델로 각광받으면서 결혼을 걱정하던 때였다.

양문형 냉장고가 보편화되면서 시장이 시들할 무렵. '지펠'과 '디오스'의 브랜드 경쟁은 김치냉장고로 이어졌다. '삼성 지펠 아삭'과 'LG 디오스 김치톡톡'이다.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모델을 거쳤고 최근까지도 '지펠 아삭'은 전지현, '디오스 김치톡톡'은 김태희를 각각 내세웠다.

하지만 집에서 김치를 담가먹는 인구가 줄고, 저염식단이 각광을 받으면서 김치를 보관하는 김치냉장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멀어졌다. 김치냉장고는 김치 대신 쌀이나 다른 식재료를 보관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작년부터 톱스타가 나오는 김치냉장고 광고를 보기 힘든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삼성전자가 13일 과감한 발표를 했다. 김치냉장고 신제품에서 '지펠 아삭'이라는 브랜드를 빼고 프리미엄 냉장고 '김치플러스'로 브랜드를 바꿔 달았다.

'지펠 아삭'이 '김치플러스'로 변경되면서 삼성전자의 가전제품 중에 '지펠'이 붙는 제품은 사라지게 됐다. 일부 제품에 고객들의 편의상 '지펠'이 붙어 있을 뿐 공식적으로는 브랜드가 없어졌다. 식감을 나타내는 '아삭'마저 브랜드에서 빠졌다. 이는 김치가 '메인'이 아니고 소비자들이 김치냉장고에 '김치 특유의 아삭한 맛'을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기자간담회에서 이무형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삼성 ‘김치플러스’는 김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별 맞춤 보관기술로 기존 식품 저장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을 신개념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기존에 '김치냉장고에 이것도 넣으면 좋다'는 개념에서 '식재료 보관이 잘되는 프리미엄 냉장고인데 기본적으로 김치 맛도 좋다'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자체 결과를 보면 '지펠 아삭'을 버리기까지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김치의 소비량은 최근 몇년동안 약 24%가 감소했고, 다른 용도에 대한 니즈가 약 65% 증가했다. 주거 형태의 변화도 한 몫을 했다. 1~2인 가구가 급증했고 공급되는 아파트는 전용면적 84㎡ 이하의 소형이 주를 이루면서 김치냉장고를 따로 놓기가 어려워졌다.

삼성에게 김치플러스는 기존의 김치냉장고 기능에 △뿌리채소나 열대과일을 보관하는 베란다 뒷편의 서늘한 광 △와인냉장고 △냉동고 등의 기능을 하나로 담아내되 공간을 적게 차지해야하는 미션을 담은 제품이었다. 외형적으로는 기존 91cm에서 너비를 11cm 줄인 80cm의 슬림디자인에 빌트인과 같은 히든디자인만 보면 어느정도 미션을 완수한 듯 보인다.

최근 소비자들은 과시를 위한 '브랜드'를 선택하기 보다는 '실속'이나 나만의 '취향'을 선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고 600만원에 이르는 가격임에도 일반 냉장고 보다 보관을 중요시 생각하는 소비자라면 '지펠 아삭' 보다는 '김치 플러스'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성비'를 중심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는 추세도 분명히 있다. 이러한 소비자에게 10만원에 달하는 메탈 김치통과 너무나 다양한 선택사양으로 벌어진 출시가격 차이는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치플러스는 584ℓ, 486ℓ 두 가지 용량이며 출고가는 249만~599만원이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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