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 떼기도 힘든 신고리공론화위…찬반단체 모두 "기울어진 운동장"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한 달간의 시민참여단 숙의과정에 들어가기도 전에 파행 위기에 처했다. 정부와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찬반 양측 모두로부터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선언할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는 시각이 많다.

◆양측 모두 “기울어진 운동장”

신고리 5·6호기 건설 찬반 단체 모두 현재 상황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7월 신고리 5·6호기 건설 반대 대표 단체로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을, 찬성 대표 단체로 한국원자력산업회의를 선정했다. 시민행동은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에너지정의행동 등의 환경단체가 연합해 설립했다. 원자력산업회의는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 삼성물산 두산중공업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원전 건설 관련 업체들로 구성됐다.

시민행동은 14일 성명서를 통해 “문 대통령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를 공약했음에도 정부와 여당은 중립을 지키겠다며 모든 발언과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며 “공론화 절차 뒤에 숨은 무책임과 퇴행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론화위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적대적 태도로 일관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시민행동은 공론화위가 시민참여단에 배포할 자료집 서문에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시 지역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등의 내용을 포함하기로 한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상훈 시민행동 공동상황실장은 “서론에 마치 한수원에서 쓴 것 같은 내용이 들어갔다”며 “판이 기울어졌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정부와 원자력산업계가 싸워야 하는데 판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정부가 빠진 상황에서 왜 우리만 전면에 나서야 하는지 회의적인 목소리가 내부에 있다”고 말했다.

원전업계의 생각은 정반대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탈원전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한수원과 원자력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원전의 장점을 소개한 글들은 ‘공론화 과정에서 중립을 훼손할 수 있다’며 지우도록 했으면서 정작 산업부는 지난 6일 탈원전 홍보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말했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인터뷰에서 “원전은 더 이상 값싼 에너지원이 아니다. 탈원전을 해도 전기요금 상승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원전업계에선 “중립성 훼손”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론화위 일정 차질 빚나

공론화위는 16일 충남 천안에서 시민참여단 오리엔테이션을 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민행동이 15일 긴급 비상대표자회의를 통해 공론화 과정에 불참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어 오리엔테이션이 예정대로 열릴지 불투명해졌다. 시민참여단은 원자력산업회의와 시민행동으로부터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한 찬반 의견을 전달받아 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시민행동이 불참을 선언하면 반대 측 의견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이희진 공론화위 대변인(한국갈등해결센터 사무총장)은 “(시민행동이 공론화 과정 불참을 선언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시민행동이 불참하면 다른 대표 단체를 선정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에 대해 계속 논의 중이고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답했다.

한 에너지학과 교수는 “국가 전력 수급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며 “정치 싸움으로 변질돼 공론화위가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