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 출산 원인 밝혀졌다
재미 한인 과학자 부부가 동물실험을 통해 장내 미생물이 자폐아 출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리를 규명했다. 사회성 결핍, 반복적인 행동 등 자폐 증세에 영향을 주는 뇌 영역도 새로 찾아냈다. 향후 태아의 자폐증을 예방할 길이 열릴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허준렬 하버드대 의대 교수와 글로리아 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부부는 지난 1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온라인판에 임신 중 바이러스에 감염된 실험용 쥐가 자폐 증세가 있는 새끼를 낳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규명한 연구논문 두 편을 발표했다. 허 교수 부부는 실험용 쥐가 임신 중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산모의 면역체계가 활성화돼 태아의 뇌세포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지난해 밝혀내기도 했다.

자폐증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지적 장애가 생기는 등의 증세가 나타나는 발달장애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8517명이 자폐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자폐증은 대부분 태아 때 선천적으로 발병한다. 학계에서는 산모의 면역체계 활성화가 태아의 자폐증 발병과 관련있다고 보고된다. 바이러스 등이 산모의 몸 안으로 침투해 이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태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1980~2005년 덴마크에서 출생한 아기를 모두 조사한 결과 임신 3개월까지 심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폐아 출산 위험이 세 배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연구팀은 이번 논문을 통해 소화기관에 있는 절편섬유상세균(SFB)이라는 장내 미생물이 자폐증 유발과 관련 있는 면역세포 ‘Th17’ 생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항생제로 SFB를 제거했더니 실험용 쥐가 임신 중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태어난 새끼 쥐에게서 자폐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허 교수팀은 바이러스 감염이 뇌에 미치는 영향도 구체적으로 규명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산모의 면역체계가 활성화되면서 반복적 행동 및 사회성 결핍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대뇌피질의 ‘S1DZ’라는 영역을 자극한 게 원인이었다. 연구팀은 정상 쥐라도 S1DZ를 자극하면 자폐 증세가 나타나고, 자폐 증세가 있는 쥐라도 S1DZ의 자극을 억제했더니 자폐 증세가 호전됐다는 실험결과를 얻었다.

크레이그 파월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병원 교수는 네이처 논평 논문에서 “허 교수팀의 논문은 장내 세균과 면역체계, 뇌발달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한 귀중한 단서를 제공했다”며 “태아에게 해를 끼치는 면역작용을 억제하기 위해 장내 미생물을 조절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허 교수는 “최근 치매나 자폐증 같은 뇌질환을 면역반응과 연관시켜 연구하는 신경면역학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아내가 신경생물학을 전공했고 내가 면역학을 연구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융합연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