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관료들의 상상력
2018년도 예산안엔 예년보다 크게 오를 최저임금 때문에 영세 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할 인건비를 보전할 교부금이 들어 있다. 내년에 오를 16.4%와 지난 5년 동안의 상승 평균치 7.4%의 차이에 상당하는 3조원이다.

이 방안은 최저임금제의 폐해를 줄일 길을 찾아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상상은 논리를 따라 뻗는다. 논리에서 벗어나면 상상이 아니라 백일몽이다. 최저임금제를 그대로 두고 영세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방안은 너무 비논리적이라서 이 문제에 관심을 뒀던 사람들도 상상하지 못했다.

최저임금제는 시장경제의 원리와 경제학 이론에 근본적으로 어긋나서 철학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큰 문제들을 안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를 줄여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점이다. 가장 가난한 노동자의 희생을 딛고서 보다 유복한 노동자가 혜택을 얻는 방안은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안았다. 실은 훨씬 나은 대안들이 존재하니,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는 최저임금의 부작용 없이 훨씬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소득을 재분배한다. 자연히 가파르게 오를 최저임금을 걱정한 사람들의 상상은 음소득세와 같은 근본적 처방을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현실에 맞게 다듬는 길로 흘렀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은 관료들에겐 신성한 전제조건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실행하고 당장 나올 문제를 보조금으로 틀어막는 방안을 생각해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방안을 찾아냄으로써 그들은 관료들의 ‘영혼 없음’이 합리성의 벽을 뚫고 비합리성의 새로운 경지를 열 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막스 베버 자신도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관료들의 ‘영혼 없음’을 말했을 때 그는 관료들이 기계적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는 상황을 걱정했다.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관료들의 합리성에서 핵심은 자기 이익이다. 그들은 권력을 쥔 집단에 무조건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지킨다. 역사적으로 이민족 정복자에게도 기꺼이 충성함으로써 피정복민 관료들은 백성들에게 군림하는 자신의 지위를 지켰다.

그렇게 비합리적인 보조금은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칠 것이다. 무리한 선거 공약에 비합리적 정책을 결합했기 때문이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크게 늘어날 세금이다. 세금이 늘어나면 경제는 효율이 줄어든다. 근로 의욕은 감소하고 세금을 덜 내는 데 자원을 들이고 활동 무대를 해외로 옮긴다. 소득 이전 과정에서 나오는 낭비도 클 것이다. 특히 근로 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사회의 건강을 해친다. 아서 오쿤이 ‘새는 물통’이라 부른 이런 낭비는 도덕 수준이 낮고 부패가 심한 한국 사회에선 특히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 정권이 이미 선심을 많이 써서 세금을 더 거둬 보조금을 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정부의 빚이 늘어난다는 얘긴데, 이것도 큰 문제다. 빚이 늘어나면 정부 정책의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위에서 든 문제들은 모두 잘 안다. 정작 심각하지만 덜 알려진 것은 최저임금과 보조금을 결합한 이번 조치가 장기적으로 경제의 건강을 크게 해치리라는 점이다. 그동안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은 앞으로 몇 해 동안 더욱 가파르게 오를 것이다. 그런 상승은 한계 기업들의 폐업과 일자리 감소와 같은 눈에 잘 띄는 문제들을 낳을 터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조정될 것이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보조금은 최저임금의 부작용들을 덮어서 기업들의 경쟁력과 경제의 건강이 약해지는 것을 감출 것이다.

낭비와 폐해가 심하지만, 이 방안은 오래갈 수 있다. 노동조합은 물론 환영한다. 대통령의 공약이라 반대하기도 어렵다. 최저임금제에 가장 크게 반발하는 곳은 한계 기업이지만, 이들도 자신의 존속을 보장해주는 보조금을 반대할 리 없다. 아무리 폐해가 커도 이득을 얻는 집단만 있고 반대할 집단이 없으면 그 정책은 존속한다. 민중주의적 정책을 추구하는 현 정권이 남길 여러 부정적 유산 가운데 어쩌면 이것이 가장 오래 남을 수도 있다. 영혼 없는 관료들의 상상력이 처음 보는 괴물을 낳았다.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