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을 술을 벗 삼아 예술에 빠져 기인으로 살다 간 한국 근현대미술의 개척자 장욱진 화백(1917~1990)의 화풍은 풍류와 동심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서울대 교수 시절에도 자신의 직업을 ‘까치 그리는 사람’으로 소개했던 그는 ‘그림은 나의 업무, 술은 휴식’이라고 말할 정도로 풍류를 즐겼다.

그는 경기 남양주시 덕소를 비롯해 서울 명륜동, 충남 수안보, 경기 용인 등을 차례로 옮겨 다니며 작업했다. 용인에서 작업했던 작가의 후기 화풍은 환상적이고 관념적인 도상과 원색에 가까운 채도(색의 선명도)가 특징이다.

1986년 용인 시절 제작한 이 그림은 서양화가의 작품답지 않게 좌우의 뚜렷한 대칭구도로 토속적이고 동화적인 소재를 아우른 수작이다. 사람, 집, 해, 달, 나무 등을 적절하게 나눠 화면 곳곳에 배치해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선명하게 연출했다.

일정 거리를 두고 있는 소재의 간격이 독립성을 갖게 하면서도 짙은 갈색 배경을 활용해 화면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화면 중앙 아래에는 여인과 아이를 배치해 이야기적 요소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와 단단하고 꿋꿋한 여인의 동적인 모습이 서로 대조를 이루며 청량감을 더해준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