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고가 항암제 건강보험 적용 둘러싼 혼란 줄이겠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받은 신약이 건강보험 급여 명단에 포함돼 환자가 혜택을 받게 될 때까지 700일 넘게 걸립니다. 급여 등재를 기다릴 때는 허가 범위를 초과해도 쓸 수 있다가 건강보험 혜택이 시작되면 쓸 수 없게 돼 환자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혼란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병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사진)은 “건강보험 혜택 확대로 환자, 의료계, 제약업계 등의 어려움이 없도록 소통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지난해 말 약제관리실장에 임명됐다. 그는 건강보험 심사 업무만 30여 년간 맡은 이 분야 베테랑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에 파견을 갔다 온 그는 3년 만에 같은 자리로 복귀했다.

복귀 후 고가 항암제 급여 논란이 연이어 불거졌다. 화이자의 유방암 치료제 입랜스는 비싼 약값 때문에 지난 6월 건강보험 진입에 실패했다. 환자 반발은 커졌다. 한 달 뒤인 7월 화이자 측은 처음보다 낮은 약가를 제시했고 건강보험에 등재되며 사태는 마무리됐다. 8월에는 면역항암제 논란이 터졌다. BMS의 옵디보, MSD의 키트루다가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되면서 허가받은 질환(비소세포폐암 흑색종) 외의 환자는 사용절차가 복잡해졌다. 이 약으로 치료받던 일부 말기암 환자는 “심평원이 약을 쓰지 못하게 병원에 압력을 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쏟았다. 그는 “허가 범위를 초과해 사용하는 것은 비급여로 심평원에 청구되지 않기 때문에 해당 의료기관의 명단을 확보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며 “보건복지부에서 전문가, 시민단체 등과 별도 협의체를 구성해 해결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문재인 케어인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이 추진되면 이 같은 논란이 잦아질 가능성이 크다. 현행 건강보험 제도상 비급여 약제는 566개 정도다. 이 중 367개는 허가 범위보다 급여 기준이 축소돼 나머지 범위를 비급여로 쓰고 있다. 다섯 번 사용하도록 허가됐지만 건강보험 혜택은 세 번까지만 받을 수 있어 나머지는 환자가 직접 비용을 내고 쓰는 것 등이다.

이 실장은 “내년부터 매년 80~90개 정도를 급여항목에 포함해나갈 것”이라며 “본인부담률은 30%, 50%, 70%, 90% 등으로 차등할 계획인데 어떤 기준으로 분류할지 등도 중요하다”고 했다. 건강보험 약가 협상 과정에서 결렬돼 비급여로 분류된 의약품 등도 급여 등재를 유도할 계획이다. 업무 수행을 위해 7월 약가관리제도 개선팀도 구성했다.

제약업계 등에서는 문재인 케어 시행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약가 인하 등으로 보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실장은 “별도의 가격 인하 정책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돼 약가 조정 대상인 제약사가 13곳”이라며 “이들에 대한 조치로 시장질서를 유지하고 재정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체 약품비의 39.8%를 차지하는 노인 약품비 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며 “비효율적인 집행 등을 찾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재정은 충분하다”고 했다.

이 실장은 복귀 후 제약분야 협회 등과 여러 차례 토론회를 열었다. 정부의 약제 정책을 충분히 설명하고 함께 개선사항을 찾기 위해서다. 이 실장은 “제약사, 요양기관 등은 건강보험 대신 각종 서비스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전달 고객”이라며 “이들이 건강보험을 불신하면 국민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