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가운데)이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무실에서 위원들과 회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가운데)이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무실에서 위원들과 회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의 운명을 결정할 최종 공론조사가 20여 일 뒤에 이뤄진다. 하지만 공론화위원회는 20일까지도 신고리 5·6호기 건설 찬반 측 의견이 담긴 설명자료를 시민참여단에 건네지 못했다. 시민참여단은 대부분 원전 비전문가들이다. 이들이 국가적 중요 현안에 대한 결정자로 참여하려면 국내 원전산업은 물론 신고리 5·6호기와 관련한 내용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남은 20여 일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하지만 시험이 임박했는데도 공부할 교과서조차 전달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는 지난 16일 시민참여단 478명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 및 2차 설문조사를 했다. 공론화위는 8월25일~9월9일 2만여 명을 대상으로 1차 설문조사를 했고, 여기에 참여한 사람 중 성별 연령 등을 고려해 시민참여단을 선정했다. 시민참여단은 다음달 13~15일 합숙을 하며 3~4차 설문조사에 응한다. 공론화위는 다음달 20일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에 대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한다.

공론화위는 오리엔테이션 당일 현장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찬반 측 의견이 담긴 자료집을 시민참여단에 나눠주고 한 달간 내용을 숙지할 시간을 줄 계획이었다. 자료집은 총 50페이지 분량이다. 찬반 측 의견이 20페이지씩 들어가며 나머지 10페이지 정도는 공론화위가 공론화의 개념이나 원전 현황 등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채운다.

하지만 건설 반대 측 대표단체인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이 자료 제출을 거부해 무산됐다. 시민행동은 “공론화위가 목차 등을 건설 찬성 측에 유리하게 작성하려 한다”는 주장을 펴며 제출을 거부했다.

자료집을 현장에서 배포하지 못한 공론화위는 우편을 통해 시민참여단 자택이나 직장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주 안에 발송이 이뤄질지도 불투명하다. 공론화위는 건설 찬반 양측 합의가 이뤄져야 최종 자료집을 낼 수 있는데, 양측이 상대방의 자료집 내용 등을 문제 삼으며 합의하지 않고 있다.

시민행동은 공론화위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시 주민, 근로자, 관련 중소 업체에 대한 대책을 반대 측이 제출할 자료집에도 추가하라고 한 데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행동 관계자는 “대책은 우리가 아니라 정부에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 찬성 대표단체인 한국원자력산업회의는 시민행동이 “게임의 룰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자력산업회의 관계자는 “시민행동은 우리가 보내준 자료를 보고 그에 대해 재반박하는 형식으로 자료집을 아예 새로 만들어 공론화위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공론화위는 21일 건설 찬반 양측을 불러 자료집 배포를 위한 합의를 설득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민행동은 22일 대표자회의를 열어 공론화위에 계속 참여할지 결정할 계획이어서 이날 합의가 이뤄질지 미지수다. 자료집을 인쇄하고 우편으로 배달하는 시간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주 발송하지 못하면 내용을 숙지할 기간은 20일도 남지 않게 된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다양한 배경과 연령의 일반인들이 20일 만에 원전에 대해 숙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공론화 과정이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