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은 지난 6월부터 서울 잠실동 롯데월드타워 14~16층을 본사로 쓰고 있다. 바로 위층인 17~18층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집무실을 비롯해 경영혁신실 가치경영팀, HR혁신팀 등 그룹 컨트롤타워가 입주해 있다. 신 회장이 롯데케미칼을 가까이에 두고 직접 경영을 챙기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석유화학 '슈퍼 사이클'…그룹내 서열도 바꾼다
전형적인 기업 간 거래(B2B) 업종으로 상대적으로 그룹에서 덜 주목받던 롯데케미칼과 LG화학, 한화케미칼 등 석유화학업체들이 간판 계열사로 떠오르고 있다. 사상 최대 이익 행진을 가능케 하는 업황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그룹 전체 이익의 절반을 내는 곳도 있다.

잠실 시대의 주인공은?

롯데케미칼이 선봉장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4분기 창사 이후 가장 많은 737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8151억원을 올려 종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2분기 실적은 다소 주춤했지만 3분기 실적은 다시 최고치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또 롯데케미칼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4471억원으로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등 16개 주요 롯데그룹 계열사 중에서 가장 많았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 여파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2946억원에 그친 롯데쇼핑의 5배에 육박한다.

롯데케미칼의 남다른 위상은 그룹 경영진의 포진에서도 확인된다. ‘롯데의 2인자’로 불리는 황각규 경영혁신실장(사장)은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신 회장 역시 1990년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14년간이나 경영수업을 받았다. 가치경영팀과 HR팀, 커뮤니케이션팀 등 그룹 경영혁신실 4개 팀 중 3개 팀 현 팀장도 롯데케미칼을 거쳤다.

기업 가치도 ‘쑥쑥’

LG화학은 LG전자, LG디스플레이와 함께 LG그룹의 3대 축으로 꼽힌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그룹 내 영업이익 1위를 지킨 LG화학은 올해 상반기 1조523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LG전자(1조5856억원)와 LG디스플레이(1조8312억원)에 조금 밀렸다. 하지만 하반기 실적 개선세는 눈부실 전망이다. 주력 사업인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소재(화학사업)가 탄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데다 신수종 사업인 배터리 등 전지부문도 흑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69% 늘어난 7767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 가치와 미래 성장성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인 시가총액(발행 주식 수에 주가를 곱한 것)에서는 LG화학이 27조5000억원으로 LG전자(14조3200억원)와 LG디스플레이(11조4680억원)를 크게 앞선다.

방산과 금융이 중심이던 한화그룹에서도 화학사들이 주력으로 떠올랐다. 한화토탈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1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한화그룹 역사상 최대 이익을 낸 계열사로 등극했다. 가성소다(CA)와 폴리염화비닐(PVC) 등 기초 소재를 생산하는 한화케미칼도 지난해 창사 이후 가장 많은 779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한화토탈(7956억원)과 한화케미칼(3150억원) 등 화학 계열사들은 한화그룹 전체 영업이익(2조857억원)의 53%를 책임졌다.

실적 호조 속에 지난주 한화케미칼이 500억원어치 회사채(3년 만기물) 발행을 앞두고 진행한 사전 청약에는 6550억원의 주문이 몰려 13.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2012년 사전 청약제가 도입된 이후 최고 경쟁률이었다. 높은 인기 덕분에 발행 금리도 당초 희망 금리보다 0.14%포인트가량 낮은 연 2.31% 수준에 정해질 예정이다.

김창범 한화케미칼 사장은 “석탄 가격이 오르면서 석탄을 원재료로 PVC를 생산하는 중국 업체들의 원가 경쟁력이 떨어져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며 “올해도 작년 수준의 실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