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문제로 짐 돼서는 안되겠다고 생각"…48년만에 퇴진
화재·증권·생명 등 주력 금융사 감안 '금융전문가' 회장 선임


여성 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된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이 21일 전격 사임했다.

김 회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제 개인의 문제로 인해 회사에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오늘 동부그룹의 회장직과 계열회사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최근 제가 관련된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

특히 주주, 투자자, 고객, 그리고 동부그룹 임직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장남인 김 회장은 1969년 고려대 재학 중 미륭건설을 창업해 건설업에 뛰어든 뒤 1970년대 중동 건설 경기 붐을 바탕으로 사업을 키워 금융, 보험, 석유화학, 전자 등으로 업종을 확장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유동성 위기에 이어 최근 강도 높은 구조정을 진행한 김 회장은 최근에는 그룹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내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그룹명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상습 성추행 혐의로 여성 비서로부터 고소당했다는 경찰 발표가 나온 지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구조조정 작업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으로 최근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된 김 전 회장은 현재 신병 치료차 미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경찰 소환 조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후임에는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이근영 동부화재 고문이 선임됐다고 동부그룹은 밝혔다.

행정고시(6회) 출신의 신임 이 회장은 광주지방국세청장, 국세심판소장, 재무부 세제실장 등 공직을 거쳐 한국투자신탁 사장,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한국산업은행 총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등을 지냈다.

지난 2008년 동부메탈·동부생명 사외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2010년 동부화재 사외이사, 2013년 동부화재 고문 등을 역임하면서 동부그룹과는 오랜 기간 인연을 맺었다.

이 회장 선임은 현재 그룹 주력 사업이 동부화재, 동부생명, 동부증권, 동부저축은행 등 금융 부문이라는 점을 감안해 '금융 전문가'가 절실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이 신임 회장이 김 회장 사퇴에 따른 그룹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고 경영을 쇄신할 것"이라며 "계열사별로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 책임경영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huma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