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생활 속 경제이야기] 애향심과 지역경제 발전
최근 지역분권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미국 시애틀의 발전 사례가 더욱 주목받는 듯하다. 시애틀이 미국 대도시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이자 첨단 정보기술(IT) 분야를 거점으로 한 전도유망한 도시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애틀이 원래부터 IT, 소프트웨어 분야에 강점이 있는 도시는 아니었다. 초기에는 산림 벌목과 광업에 기반해 성장해왔고, 제1, 2차 세계대전 때는 군수산업과 해군기지 입지 등에 힘입어 발전했다. 시애틀은 어떻게 첨단 IT 분야를 대표하는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출발은 두 청년의 애향심에 기원을 두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설립자인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그들이다. 원래 MS사가 설립된 곳은 시애틀에서 2200㎞ 떨어진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였다. 1975년 종업원 3명으로 시작한 MS는 3년 뒤인 1978년 매출 1000만달러 기업으로 성장했다. 두 설립자는 회사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해 새로운 거점 지역을 모색했다. 이때 그들이 선택한 곳이 시애틀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게이츠와 앨런이 시애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1979년 MS는 시애틀로 이전했다.

[박정호의 생활 속 경제이야기] 애향심과 지역경제 발전
MS가 이전할 당시 시애틀은 쇠락하는 도시 중 하나였다. 당시 발간된 이코노미스트지는 시애틀을 ‘절망의 도시’라고 표현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 각종 중고품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이처럼 절망적인 도시였던 시애틀은 고향을 찾아 돌아온 두 청년에 의해 180도 탈바꿈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시애틀과 앨버커키는 인구 대비 대졸 근로자 비율이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MS의 성장에 힘입어 2000년대 들어 두 도시의 격차는 30%포인트 이상으로 확대됐다. 범죄율 역시 시애틀은 앨버커키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현재 시애틀의 중위소득은 8만달러 수준으로, 미국 전체 평균보다 25% 이상 높아졌다.

두 청년의 애향심이 낳은 기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애틀 MS 본사에서 근무하는 2만여 명에 달하는 연구개발(R&D) 전문 인력 덕분에 IT 분야 창업가들이 가장 손쉽게 전문 인력을 조달할 수 있는 도시로 거듭났다. 이로 인해 뉴욕에 거주하던 제프 베저스는 1994년 아마존을 설립하기 위해 시애틀로 이사했다.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페이스북, 이베이, 구글 등이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선택한 거점 도시 역시 시애틀이다. 시애틀에는 MS 출신 직원이 설립한 회사만도 4000여 개에 이르고 있다.

이제 곧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다. 올해 3000만 명 가까이가 고된 귀성길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애향심과 귀소본능이 우리 고장의 미래 발전을 이끌어낼 중요한 자산임을 시애틀이 증명해주고 있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