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금융감독원·대한석탄공사 등 공기업 채용 비리가 불거지며 허탈감에 빠진 취업준비생들이 행동에 나섰다. 부정청탁을 주고받은 관계자에 그치지 않고, 부정청탁으로 입사 혜택을 본 합격자도 처벌해야 한다며 국민청원에 나섰다.
"합격 취소하라"… 채용비리 뿔난 공기업 취준생
◆“부정 합격 입사 취소해야” 국민청원

국내 최대 공기업 취업준비사이트인 ‘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공준모)’은 21일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하기’ 코너에 공기업 채용 비리를 처벌해 달라는 청원서를 올렸다. 이 게시글에는 동조하는 사람들의 ‘서명’ 행렬이 이어졌다.

청원서는 기업의 책임자 처벌뿐만 아니라 부정하게 합격한 당사자를 처벌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비리로 입사한 만큼 계속 근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합격을 취소하고, 수년간 응시 자격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원에 서명한 한 취업준비생은 “어영부영 넘어가면 여러 공공기관 부정 입사자들은 60세 정년까지 그 자리를 지키게 된다”며 “입사 취소만이 피해를 본 탈락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 방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기업 취업 관련 비리 목격담과 사례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 수험생은 “최근 서류를 내러 갔더니 한 응시자가 담당자와 잘 아는 듯 따로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며 “혹시 ‘빽’이 있거나 채용 비리가 아닐까 너무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지방 공기업에 응시했다는 다른 수험생은 “필기시험 때 앞자리가 결시였는데 필기 합격자 명단에 빈자리 수험번호가 들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공기업 정책 효과 반감’ 우려도

공준모가 청원 운동에 나선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채용 비리가 드러난 공기업에 지원했다는 한 수험생은 “공공연하게 돌던 얘기가 확인된 것 같다”면서도 “잘못 항의했다가 ‘응시자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봐 항의할 생각은 꿈도 못 꾸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채용 시장을 넘어 사회 전반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비리에 이름을 올린 공기업이 추진하는 정책은 국민들의 거부감 탓에 집행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합격 취소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부정청탁 여부와 별개로 ‘부적격’ 여부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확실히 판단할 수 있는 정량평가에서 부정이 있었다면 모르지만 직무적성, 대인관계 등 수치로 계량할 수 없는 정성평가는 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얘기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취소나 채용 철회를 하기 위해선 지원 자격에 명백히 위배된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