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정당들이 표류하고 있다. 대선 참패에 이어 지지율이 바닥을 맴도는데도 반성과 혁신의 기류는 미지근하다. 정부 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만으론 안 된다. 치열한 자성과 환골탈태가 절실하다.

우선 우파의 공(功)은 계승하되 과(過)를 바로잡아야 한다. 우파의 공은 세 가지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근대국가 수립이다. 둘째, 압축 산업화에 따른 절대빈곤 탈출과 분배 개선, 중산층 형성 등이다. 셋째, 절차민주주의 확립과 세계화다. 그 결과 구매력 기준 순소득이 1인 가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위, 4인 가구는 9위에 이르렀고 우리 경제력은 북한의 45배로 불어났다.

문제는 우파의 잘못이다. 이 역시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권위주의 통치로 공권력이 남용되고 정쟁과 지역감정, 노사 갈등이 확산됐다. 둘째, 정부 주도 개발독재는 자기책임원칙의 이완, 정경유착과 학계·언론·시민사회·문화·종교계의 정치화를 불렀다. 셋째, 법치의 훼손, 계파 패권주의와 ‘뺄셈정치’, 기득권 옹호, 도의적 책무 소홀 등 실체민주주의 외면도 큰 허물이다.

아울러 우파의 가치와 정향(定向)을 혁신 준거로 삼아야 한다. 우파 가치는 네 가지다. 첫째, 인간의 존엄을 바탕으로 개인 자유를 존중하고 이견을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다. 둘째, 자율과 다양성을 보장하고 유인(誘引)을 중시하며 기회 균등과 공정한 질서를 지향하는 시장경제다. 셋째, 공동체를 위해 자유의 한계를 규율하는 법치(낮은 길)와 도의적 책무 이행과 사회자본 확충을 꾀하는 예치(禮治, 높은 길)의 병행이다. 넷째, 문호를 개방하고 배타적 민족주의를 배격하며 인류애를 함양하는 세계주의다.

우파의 정향도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 역사를 존중하고 현실에 기초해 미래를 지향함에 따라 연속성을 담보한다. 둘째, 300년 넘게 이어온 영국 보수당처럼 유연성과 실용에 무게를 둔다. 이는 중용(中庸)에 나오는 이동하는 시중(時中), 율곡(栗谷)의 시무(時務)와 궤를 같이한다. 셋째, 점진적이고 질서 있는 변화를 선호한다. 넷째, 애국심과 구심력을 강조한다. 요컨대 우파는 대응(responsive)보다 책임(responsible)을 중시한다. 당대에 충실한 ‘어진 재상’보다 후대까지 내다보는 ‘현명한 재상’을 더 높이 여기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파의 혁신 방향은 세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우파 본연의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중론(衆論)을 좇는 정치공학보다 정론(正論)에 따른 정책 마케팅에 진력해야 한다. 법치와 지도층의 도의적 책무를 확립해야 한다. 정부 입김을 줄이는 경제자유화에 힘써야 한다. 관제경제와 조장행정의 잔재를 청산하고, 정부의 규제·감독·지원에 편승한 기득권을 줄여야 한다.

둘째, 중도실용 기조로 사회 통합에 적극 나서야 한다. 중도주의는 근세 유럽의 정교분리 때 태동된 자유민주주의의 철학적 논거다. 독일은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패한 교훈으로 양보와 포용의 연정(聯政)이 정착되고 국정 연속성도 높아졌다. 개방과 소통의 협치(協治)로 이견을 아우르는 대안 개발에 힘써야 한다. 대응에 치중하는 ‘여민(與民)’과 책임을 부각하는 ‘위민(爲民)’이 조화를 이룬 세종(世宗)의 ‘여의(與議)’정치를 본받아야 한다. 지역·세대·소득계층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실용 노선도 긴요하다. 연공서열, 전일제 근로 등 낡은 규범과 제도를 갱신해야 한다. 생활정치 구현과 현장정책 개발 역시 강화돼야 한다. 세종의 훈민정음, 농사직설, 노비 출산휴가가 그 전범이다. 제5공화국의 야간통금 해제와 교복 자율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중교통 혁신과 미국 방문비자 면제 등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셋째, 체계적인 지도자 육성과 시민교육 강화도 빼놓을 수 없다. 선진국처럼 일찍 정계에 입문해 현장을 두루 경험하면서 리더십을 익힌 전문정치인을 길러내야 한다. 우파 열세지역과 취약계층 중심의 탕평과 세대교체는 필수다. 정당 연수기능을 강화하고 민간 싱크탱크의 자생력도 보강해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지만, 파국으로 치닫는 변곡점이기도 하다. 역사가 웅변한다.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