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부터 가동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평택반도체 공장 1라인 전경. 삼성전자는 반도체 4개 라인을 깔 수 있는 축구장 400개 크기(289만㎡)로 설계했다.  /연합뉴스
지난 7월부터 가동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평택반도체 공장 1라인 전경. 삼성전자는 반도체 4개 라인을 깔 수 있는 축구장 400개 크기(289만㎡)로 설계했다. /연합뉴스
“솔직히 전력망이 불안해서 앞으로 국내 투자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고위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반도체산업은 국내 수출경기 호황의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관련 기업을 불러 모아 해외 투자 대신 국내 투자를 독려할 정도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8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린 반도체·디스플레이 간담회에서 “민간 기업들이 반도체 투자에 필요한 대규모 전력 공급망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며 “정부가 전향적으로 나서 이 문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014년 10월 평택공장 투자를 발표할 당시 계획한 전력 공급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서안성변환소에서 평택 고덕변전소를 연결하는 고압송전선로 건설 계획이다. 부지 확보를 위해 한국전력이 지역 주민들과 협상에 나선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초 삼성전자는 내년 송전선로 건설에 착공해 2019년 6월 완공을 기대했다. 지역 주민들과 합의가 지연되면서 한전은 최근 완공 시점을 2023년 2월로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과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더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전은 평택공장 남쪽의 전력공급기지인 북당진변환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도 당진시와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벌였다. 올해 초 승소한 한전은 지난 3월에야 착공했다. 당초 계획한 공사 일정은 맞추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삼성전자다. 평택공장은 향후 증설을 고려해 반도체 라인 4개를 깔 수 있는 축구장 400개 크기(289만㎡)로 설계됐다. 1라인의 복층 설비 투자가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전력 상황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2라인 가동이 본격화하면 전력 부족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전력망을 확보하지 못하면 조기 투자도 추진할 수 없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SK하이닉스도 백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이천 반도체 공장에 추가 투자할 경우 전력망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기업에 필요한 인프라도 충분히 지원하지 않으면서 국내 투자를 강요한다”고 업계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