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서두를 이유 없는 도시재생뉴딜사업
10년 전 강남에서 현재 사는 강북으로 이사했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골목골목의 쌀가게와 소금가게, 방앗간 같은 오래된 점포였다. 이후 빠르게 재개발이 이뤄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이들 점포는 하나둘 사라졌다. 그 자리는 세태 변화를 반영하듯 네일숍, 식빵전문 빵집 같은 다양한 신규 상점으로 채워졌다.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돈과 청년실업자, 조기퇴직자들이 손쉽게 창업이 가능한 업종에 몰리면서 동네 상점의 임차 수요가 급증했고, 임대료가 치솟아 기존 세입자들이 등 떼밀려 지역을 떠나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사업’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고 매년 10조원, 임기 내 50조원을 들여 500개 옛 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살려내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의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인구의 92%(국토교통부 도시계획현황 통계)가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보면 도시재생사업은 매우 필요한 사업임에 틀림없다. 생산가능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경제·산업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도시에도 큰 변화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계속되는 저금리와 저성장으로 주식, 채권뿐 아니라 상업용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리는 상황에서 투기를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급기야 정부는 ‘8·2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서울시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도시재생뉴딜 대상 사업에서 제외시켰다. 또 국회는 여야 공동으로 도시재생 과정에서 땅값과 임대료 상승 등으로 기존 거주민과 임차인이 밖으로 내몰리는 부작용을 막는 내용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법(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핵심은 부동산이 저금리 기조로 이미 머니게임에 들어간 상황에서 4대강 사업비용의 두 배가 넘는 재정자금이 전국 각 도심에 뿌려진다는 것이다. 사업 후보지로 거론되는 옛 도심과 노후 주거지 부동산값은 이미 들썩이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 재정자금을 타오기 위해 대응 전략을 짜고 있고, 유관 업계의 치열한 각축전도 시작되고 있다.

물론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추구하는 정책 목표나 사업 방식은 과거에 추진한 재개발·재건축사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재원을 보면 매년 10조원의 재원 중 정부 재정부담은 2조원인 20%에 불과하다. 주택도시기금 5조원, LH 등 국가공기업 3조원 등 나머지 80%는 회수를 해야 하는 투자재원 성격의 자금이다. 투자 성격을 소홀히 한다면 공기업 부채를 늘렸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한 선진국 예를 보면 도시재생사업은 지자체와 지역주민이 충분한 합의를 거쳐 자체적으로 추진해야 성공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속도전을 벌일 성격의 사업이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가 예산 지원을 해야 할 명분이 불명확하다. 사업 규모나 성격상 기본적으로 지자체 예산으로, 지자체와 주민 주도로 해야 하는 사업이란 이야기다. 중앙정부가 예산 지원을 한다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도시재생뉴딜사업이 기여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재정 지원을 해 주는 것이 옳다.

이미 3년이나 해온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의 성과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받아 보완하는 작업을 거치지 못하고 대선 공약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판이 커져버렸다. 더욱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용 생색내기가 되거나 관 주도로 이뤄지는 졸속 정책에 지자체별로 예산 나눠먹기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개발연대도 아닌데 재정을 투입하는 인위적 도시 개발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발상은 아직까지도 도시와 지역을 주민의 삶터로 보기보다는 여전히 개발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도시재생사업이 또 다른 적폐청산 대상이 돼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무엇이 주민을 위하고 도시를 재생하는 방법인지 이번 가을 국정감사와 예산심의에서 냉정하게 검토돼야 할 것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