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대기업과 금융그룹 계열 자산운용사가 주도해온 주식형 공모펀드 시장(상장지수펀드 포함)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신영자산운용이 KB운용을 제치고 처음으로 순자산(설정액+운용수익) 기준 업계 3위로 올라섰다. KB운용과 한투신탁운용은 ‘간판’ 펀드매니저의 이탈과 주력 펀드의 부진 속에 올해 액티브 주식형 펀드에서만 1조원 안팎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주식형 펀드 '빅3 구도' 깨졌다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영운용의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순자산(지난 21일 기준)은 5조3050억원으로 집계됐다. 삼성운용(10조5951억원)과 미래에셋운용(10조4023억원)에 이은 업계 3위다.

KB운용과 한투신탁운용은 올 들어 액티브 주식형 공모펀드에서만 각각 9954억원, 1조2717억원이 빠져나가며 4위와 5위에 머물렀다. 두 회사가 3위권 밑으로 내려온 건 2011년 이후 6년 만이다.

문수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계열 은행 또는 증권사가 펀드 판매를 적극 밀어주는 대형 운용사를 신영운용이 제쳤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신영운용은 중형 증권사인 신영증권 계열 회사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신영운용의 ‘실용적 가치투자’ 철학이 꾸준한 수익률로 이어지고, 여기에 매력을 느낀 투자자들이 몰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치투자란 저평가된 우량주를 발굴해 끈기 있게 기다린 뒤 차익을 내는 방식이다.

신영운용을 비롯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메리츠자산운용 등이 대표적인 가치투자 운용사다. 신영운용은 중소형주에 주로 투자하는 다른 가치투자 운용사와 달리 대형주를 펀드에 65% 안팎 담는다.

2년째 지속되고 있는 대형주 주도 장세에서도 꾸준한 수익을 낸 비결이다. 2015년 8월 이후 150% 이상 오른 삼성전자도 펀드마다 8~10%씩 담고 있다. 삼성전자 비중이 2% 안팎인 메리츠운용과 삼성전자를 모두 판 한투밸류운용과 차이를 보인다.

두 회사의 연초 이후 수익률이 4.65%와 5.34%에 머문 데 비해 신영운용은 11.56%를 기록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가치 투자자로서 최근 주가가 가파르게 오른 삼성전자를 계속 담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라며 “시장 변화에 맞춘 유연한 가치 투자가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때 업계 3위 자리를 놓고 다툰 한투신탁운용과 KB운용은 펀드 자금 유출세 속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KB운용의 대표 펀드인 ‘KB밸류포커스’는 순자산 1조원이 넘는 이른바 ‘공룡펀드’에서 빠졌다. 올 들어 4242억원이 빠져나간 탓이다.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하고 국내 주식형 펀드 가운데 1조원을 넘는 펀드는 신영운용의 ‘밸류고배당’(2조7466억원)이 유일하다.

한투신탁운용은 간판 펀드매니저였던 박현준 전 코어운용본부장(현 씨앗자산운용 대표)이 이직한 타격이 컸다. 이 회사의 ‘네비게이터’ 펀드는 박 본부장이 사의를 밝힌 2월 말 이후 2513억원이 빠져나갔다. ETF를 제외한 액티브 공모펀드 설정액은 신영운용이 4조7018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한투운용(3조4254억원)과 KB운용(3조1262억원)이 2위와 3위에 올랐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