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알스톰과 독일 지멘스가 철도차량생산 부문을 합병한다. 두 회사는 26일(현지시간) 각각 이사회의 만장일치 승인을 거쳐 철도사업부문 합병을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도 합병 계획을 승인했다. 이번 합병은 세계 철도차량 시장의 약 50%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 국유기업 중국중처(中國中車·CRRC)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 알스톰-독일 지멘스 철도사업 합병… 마크롱은 왜 승인했을까
◆사실상 지멘스가 지배하는 구조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알스톰과 지멘스는 합병으로 신설될 회사 지분을 원칙적으로 50%씩 소유하게 된다. 하지만 지멘스는 설립 이후 2%의 지분을 추가 취득할 권리를 갖게 돼 사실상 지멘스가 경영권을 갖는 구조로 짜일 전망이다.

신임 임원 11명 중 6명을 지멘스가 지명한다. 기업 이름도 ‘지멘스-알스톰’으로 확정했다. 2018년까지 통합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두 회사의 철도부문 매출은 151억유로(2016년 기준 약 20조원) 규모이며 종업원 수는 5만9990명이다. 통합 4년 뒤에는 4억7000만유로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이들은 내다보고 있다.

두 회사가 내세우는 합병의 표면적인 이유는 고속철 차량 생산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중국 업체 CRRC의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조 케저 지멘스그룹 회장은 “아시아의 지배적 플레이어가 세계 시장 생태계를 크게 바꿨다”며 CRRC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프랑스 언론들은 ‘강한 유럽’에 대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의지도 이번 합병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유럽에서 ‘챔피언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기업들이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사노피와 독일 아벤티스 의약부문 통합과 비슷한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게 마크롱 대통령의 생각이다. 그는 특히 유럽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에너지와 수송 산업에서 미국과 중국에 대항할 만한 대규모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프랑스 강성 노조와의 대결 측면도

고속철 TGV를 생산하는 알스톰은 프랑스의 대표적 기업이지만 2004년 정부 지원으로 파산 위기를 모면한 바 있다. 3년 전에는 에너지사업부문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에 매각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왔다. 알스톰은 강성 노조가 성장을 막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프랑스노동총동맹(CGT)과 민주노동총연맹(CFDT), 노동자의 힘(FO) 등 프랑스의 대표적인 노조 단체는 모두 알스톰에 노조 지부를 두고 있다. 복수 노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 노조는 기업 경영에 간섭하고 목소리를 키워 왔다.

기업 활동은 자연스레 위축됐고 매출은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프랑수아 올랑드가 이끄는 사회당 정부는 매출 부진을 겪는 알스톰의 벨포르 공장을 폐쇄하려 했지만 노조 반대로 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 공장을 위해 필요하지 않은데도 5억유로의 고속철을 알스톰에 주문하기도 했다. 노동개혁을 최고 과제로 선포한 마크롱은 이런 알스톰의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지멘스 합병을 꾀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노조·극우 정치가들 반발

알스톰과 지멘스의 합병 소식이 알려지면서 알스톰의 복수 노조는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클로드 몽다르 프랑스관리직총동맹(CFE-CGC) 대표는 “(노조가) 지멘스와 모든 면에서 충돌을 빚을 것”이라고 했으며, 대니얼 드레거 CGT 대표는 “지멘스는 올해만 해도 1700명을 해고한 기업”이라며 “알스톰에도 해고 바람이 몰아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패트릭 드 카라 CFDT 대표는 “프랑스 정부가 고용 유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 통합을 반대해온 극우 정치인도 거들고 나섰다. 대선 후보로 나왔던 니콜라 뒤퐁 에냥 공화국세우기 대표는 “TGV는 결국 독일의 것이 될 것”이라며 “정부는 왜 이런 불평등한 합병을 받아들이느냐”고 비판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번 합병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기 위해서는 5~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