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1년-②] 교사·학부모 홀가분하지만…씁쓸한 '카네이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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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1년, 학교 현장은 달라졌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변화다.
김영란법은 촌지 근절에 결정타로 작용했다. 앞서 일선 학교와 교육청 차원에서 자정 노력을 해오던 참에 법제화까지 됐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서로 “홀가분해졌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며 반겼다. 확실한 ‘빛’이다.
‘그림자’도 뒤따랐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 논쟁이 대표적이다. 마음이 오가는 세세한 부분까지 법으로 가부(可否)를 정한 게 걸림돌이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교육자로서 자존심이 상했다는 교사도 적지 않았다.
◆ 예의로 포장된 '찜찜함' 사라졌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정모 씨는 “아이 선생님 만날 일이 있으면 음료수라도 한 박스 사가는 게 ‘예의’ 같았다. 그런 찜찜함이 사라졌다”고 귀띔했다. 인천의 중학교에 근무하는 박모 교사도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받지만 혼자 다 먹을 수도 없어 음료수 돌리는 게 일이었다. 차라리 홀가분하다”며 웃어보였다.
이처럼 교사와 학부모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다. 서울시교육청이 김영란법 시행 1년을 맞아 교직원 1만8101명, 학부모 3만69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교직원 85%, 학부모 83%가 “촌지 등 금품 수수 관행이 사라졌다”고 답했다. 또 교직원 82%, 학부모 76%는 “부정청탁 관행이 사라졌다”고 했다.
학부모 95%가 법 시행에 찬성했으며 교직원 95%, 학부모 87%는 김영란법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교직원 92%, 학부모 95%가 김영란법 시행이 교육 현장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는 등 대체로 80~90%대의 높은 비율로 긍정 평가를 내렸다.
특히 촌지 관행은 완전히 끊겼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임모 교사는 “서울의 경우 김영란법 시행 훨씬 이전부터 촌지 근절에 힘써왔다. 아예 스승의 날 행사를 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문모 씨도 “스승의 날 아이 선생님에게 쓴 편지가 봉투도 뜯지 않은 채 돌아오더라”고 전했다.
교단이 벌여온 자정 노력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됐다. 더러 성의라며 전해오는 학부모 선물을 손사래치며 거절하던 교사들이 이제는 “김영란법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곧바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법안을 낸 김영란 서강대 석좌교수의 당부대로 ‘거절 명분’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 "일일이 검사 받는 '관치' 아쉬워"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은 남아있다. 일상의 관계에 ‘법’이 들어오면서 낳은 딱딱함 탓이다. 사제지간에 ‘벽’이 생겼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3·5·10(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가이드라인, 법 적용 여부 등을 일일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유권해석 받는 풍토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올해 5월15일은 김영란법 시행 후 처음 맞는 스승의 날이었다. 권익위는 종이를 접어 만든 카네이션도 법 위반으로 판단해 논란을 빚었다. 학생 대표가 공개적으로 달아주는 카네이션은 허용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교장이 학교 비용을 털어 교사들에게 카네이션을 건네기도 했다. 인천의 중학교 박 교사는 “지나치게 법으로 강제하면서 ‘오버’하니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잠재적 범법자’로 취급되는 분위기가 교직사회의 심리적 저항을 불렀다. 경기도 고교 이모 교사는 “학생들이 ‘선생님한테 이것 드리면 잡혀가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제자에게 인간적으로 존경받기는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자발적 문화에 앞서 규정부터 강제된 부작용인 셈이다. 서울 소재 대학 박모 교수는 “법 취지와 별개로 ‘캔커피 하나라도 안 된다’며 시민의 삶에 정부가 옳고 그름을 정해주는 관치(官治)가 문제”라고 짚었다. 서울교육청 설문에서도 “상담을 위해 학교에 방문할 때는 커피 한 잔을 허용해달라”, “스승의 날에 최소한의 감사 마음 표시는 허용해달라” 등의 의견이 나왔다.
음성적으로 관행이 계속되거나 법 해석이 모호한 점은 미해결 과제다. 올 초 서울권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모 씨는 “영 마음에 걸려 지도교수에게 5만 원 미만 와인을 선물했다. ‘이러면 안 된다’면서도 받더라”고 했다. 인천의 어린이집 학부모 김모 씨는 “어린이집 원장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고 교사는 예외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헷갈리는 부분이 많다”고 꼬집었다.
김봉구/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김영란법은 촌지 근절에 결정타로 작용했다. 앞서 일선 학교와 교육청 차원에서 자정 노력을 해오던 참에 법제화까지 됐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서로 “홀가분해졌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며 반겼다. 확실한 ‘빛’이다.
‘그림자’도 뒤따랐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 논쟁이 대표적이다. 마음이 오가는 세세한 부분까지 법으로 가부(可否)를 정한 게 걸림돌이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교육자로서 자존심이 상했다는 교사도 적지 않았다.
◆ 예의로 포장된 '찜찜함' 사라졌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정모 씨는 “아이 선생님 만날 일이 있으면 음료수라도 한 박스 사가는 게 ‘예의’ 같았다. 그런 찜찜함이 사라졌다”고 귀띔했다. 인천의 중학교에 근무하는 박모 교사도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받지만 혼자 다 먹을 수도 없어 음료수 돌리는 게 일이었다. 차라리 홀가분하다”며 웃어보였다.
이처럼 교사와 학부모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다. 서울시교육청이 김영란법 시행 1년을 맞아 교직원 1만8101명, 학부모 3만69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교직원 85%, 학부모 83%가 “촌지 등 금품 수수 관행이 사라졌다”고 답했다. 또 교직원 82%, 학부모 76%는 “부정청탁 관행이 사라졌다”고 했다.
학부모 95%가 법 시행에 찬성했으며 교직원 95%, 학부모 87%는 김영란법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교직원 92%, 학부모 95%가 김영란법 시행이 교육 현장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는 등 대체로 80~90%대의 높은 비율로 긍정 평가를 내렸다.
특히 촌지 관행은 완전히 끊겼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임모 교사는 “서울의 경우 김영란법 시행 훨씬 이전부터 촌지 근절에 힘써왔다. 아예 스승의 날 행사를 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문모 씨도 “스승의 날 아이 선생님에게 쓴 편지가 봉투도 뜯지 않은 채 돌아오더라”고 전했다.
교단이 벌여온 자정 노력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됐다. 더러 성의라며 전해오는 학부모 선물을 손사래치며 거절하던 교사들이 이제는 “김영란법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곧바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법안을 낸 김영란 서강대 석좌교수의 당부대로 ‘거절 명분’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 "일일이 검사 받는 '관치' 아쉬워"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은 남아있다. 일상의 관계에 ‘법’이 들어오면서 낳은 딱딱함 탓이다. 사제지간에 ‘벽’이 생겼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3·5·10(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가이드라인, 법 적용 여부 등을 일일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유권해석 받는 풍토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올해 5월15일은 김영란법 시행 후 처음 맞는 스승의 날이었다. 권익위는 종이를 접어 만든 카네이션도 법 위반으로 판단해 논란을 빚었다. 학생 대표가 공개적으로 달아주는 카네이션은 허용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교장이 학교 비용을 털어 교사들에게 카네이션을 건네기도 했다. 인천의 중학교 박 교사는 “지나치게 법으로 강제하면서 ‘오버’하니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잠재적 범법자’로 취급되는 분위기가 교직사회의 심리적 저항을 불렀다. 경기도 고교 이모 교사는 “학생들이 ‘선생님한테 이것 드리면 잡혀가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제자에게 인간적으로 존경받기는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자발적 문화에 앞서 규정부터 강제된 부작용인 셈이다. 서울 소재 대학 박모 교수는 “법 취지와 별개로 ‘캔커피 하나라도 안 된다’며 시민의 삶에 정부가 옳고 그름을 정해주는 관치(官治)가 문제”라고 짚었다. 서울교육청 설문에서도 “상담을 위해 학교에 방문할 때는 커피 한 잔을 허용해달라”, “스승의 날에 최소한의 감사 마음 표시는 허용해달라” 등의 의견이 나왔다.
음성적으로 관행이 계속되거나 법 해석이 모호한 점은 미해결 과제다. 올 초 서울권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모 씨는 “영 마음에 걸려 지도교수에게 5만 원 미만 와인을 선물했다. ‘이러면 안 된다’면서도 받더라”고 했다. 인천의 어린이집 학부모 김모 씨는 “어린이집 원장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고 교사는 예외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헷갈리는 부분이 많다”고 꼬집었다.
김봉구/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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