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한가위] 19세기 미국 노예제 참상 고발… 지하철도 대탈출 생생히 그려
열흘에 달하는 긴 추석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해외여행이나 국내 여행, 명절 인사를 다녀와도 시간이 남는 모처럼의 황금연휴다. 그동안 ‘피곤해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던 독서를 해보면 어떨까. 연휴 기간 읽을 만한 책 3권을 소개한다.

첫 번째 책은 최근 출간된 미국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은행나무)다. 19세기 미국 노예제도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책이다. 19세 흑인 노예 코라가 미국 곳곳에 비밀리에 설치돼 있는 지하철도를 타고 가까스로 다른 주에 도착할 때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인종 차별주의의 실상은 잔혹하기 그지없다. 흑인을 거세하거나 매질하고, 도망가다 붙잡히면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던 당시 실상을 그리는 작가의 문체는 담담하지만 적나라해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지금 빠져나온 곳만 아니라면 어디로든”(341쪽)이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도망가는 그녀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숙고하게 된다. 노예사냥꾼에게 쫓기는 추격전의 형식이라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지난해 전미도서상과 앤드루카네기메달, 퓰리처상, 아서클라크상을 받은 작품이다.

소설가 이승우의 신작 《모르는 사람들》(문학동네)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철학이 담긴 단편 8편을 담았다. 수록 작품은 마치 연작인 듯 모두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서로 이해하거나 이해받지 못하는 허무함’을 담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한집에 사는 가족마저 ‘가장 멀리 있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강의’의 아버지는 가족에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 고금리 대출에 손대지만 결국 그 중압감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하루아침에 숨을 거둔다. 목숨을 잃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그와 같은 집에 살던 아들과 어머니는 그의 괴로움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들은 독백한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투명해 보이던 아버지야말로 우리가 가장 모르는 사람이었다’(110쪽).

《아픈 몸을 살다》(봄날의책)는 저자 아서 프랭크가 자신의 질병 경험을 풀어쓴 에세이다. 사회학 교수인 저자는 39세에 심장마비, 그 다음해에 고환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질병 증상, 치료법, 치료 과정에서 얻은 고통, 다른 환자에 대한 조언들로 이어지는 ‘질병 수기’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저자는 질병을 겪은 ‘피해자’ 혹은 질병을 극복한 ‘영웅’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질병을 앓는 것’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고 답한다. 그가 정의한 질병이란 ‘위험한 기회’다.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 삶의 위기인 질병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자신을 또렷하게 마주보게 해준다. 또한 아프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회복’에 집착하는 대신 ‘아픈 몸을 사는 것’ 자체가 다른 방식의 삶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