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음메~' 한마리에 1200만원…첫 '유기농 한우' 키워낸 이 남자
‘음메~.’ 방목장과 연결된 축사 문이 열리자 송아지들이 앞다퉈 달려가기 시작했다. 넓은 풀밭에서 송아지들은 여유로운 한때를 즐겼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서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나무 밑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기도 했다.

지리산과 황매산이 만나는 곳. 경남 산청군 차황면에서는 이렇게 자유롭게 뛰노는 송아지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문혁 산청군광역자연순환농업영농조합 대표가 운영하는 농장이다. 이 대표는 국내 최초로 ‘유기농 한우’를 키워낸 주인공이다. 이 대표의 농장에서 자라는 한우는 유기농 사료만 먹고 방목장을 드나들며 상대적으로 넓은 축사에서 생활한다.

사육 기준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기 주 산청군을 찾았다. 이 대표는 “이제 첫 유기농 한우농장을 넘어 국내 1호 동물복지 한우농장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유기농 한우로 인증받기 위해선 몇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사료를 모두 유기농으로 써야 한다. 사료로 쓰는 곡물(조사료)은 물론 배합사료 원재료도 모두 유기농이어야 한다. 공간 기준도 있다. 한우 수소는 마리당 7.1㎡의 공간이 확보된 축사에서 키워야 하며 이보다 두 배 넓은 운동장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한우농장에 비해 세 배가량 넓은 공간에서 키우는 것이다.

이 대표는 “기준을 맞추기 어려운 것은 공간보다 사료”라고 말했다. 조사료와 배합사료를 모두 유기농으로 쓰려면 일반 사료에 비해 사료 비용만 50%가량 더 든다. 이 대표는 “유기농 한우가 산청군 차황면에서 시작된 배경도 이와 관련이 깊다”고 말했다.

차황면은 한우보다 쌀로 유명했던 곳이다. 1980년대부터 이곳에서 생산된 메뚜기 쌀은 친환경 농산물의 시작이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유기농 인증제가 도입됐을 때 차황면은 전체가 친환경 단지로 인증받았다. 분지 형태의 지형이라 농약 성분이 외부에서 들어올 일이 없다고 판단한 정부가 지역 전체에 인증해준 것이다. 이 대표는 “이 덕분에 자연스럽게 유기농 사료를 먹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메뚜기 쌀은 1990년대 말부터 차츰 힘을 잃어갔다. 다른 브랜드 쌀이 많아지면서 차별화가 희미해졌고 외환위기가 터지며 쌀값이 떨어졌다. 위기감이 지역을 휘감았다.

경상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농촌진흥청 등에서 일하던 이 대표가 고향인 차황면에 돌아온 것이 이 무렵이다. “메뚜기 쌀에 이어 새로운 소득원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귀향 후 지역 축산 농가들을 찾아가 ‘유기에 의한 순환 농법’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쌀의 부산물인 볏짚 등을 사료로 쓰면서 유기농 한우를 키우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배설물로 친환경 퇴비를 만들어 사용한다. 수년간 설득한 끝에 2004년 지역의 150개 농가를 모아 차황친환경축산영농조합법인을 결성했다. 2007년 이 대표는 국내 최초로 유기농 한우 인증을 받았다. 현재는 28개 농가에서 총 585마리의 한우를 키운다. 모두 유기농 인증을 받은 곳이다.

이 대표는 유기농 한우의 가장 큰 장점으로 안전한 먹거리라는 점을 꼽았다. 이 대표는 “방목 등을 통해 소가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유전자변형곡물(GMO) 사료를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소보다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맛은 어떨까. 이 대표는 “유기농으로 키웠다고 해서 맛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맛이나 외형이 아니라 ‘클린 미트’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유기농 한우는 마블링을 중시하는 국내 기준에 따라 일반 한우에 비해 ‘1++ 등급’을 받기 어렵다.

2007년 유기농 한우가 처음 세상에 나온 뒤 주요 백화점 상품기획자들이 앞다퉈 이 대표를 찾아왔다. “가격이 일반 한우보다 최소한 35% 비싸야 하고 별도의 유기농 판매 매장을 만들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대부분 발길을 돌렸어요. 현대백화점만이 끝까지 남았고, 이후 10년간 인연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대표의 조합에서 생산한 유기농 한우는 우선 현대백화점으로 간다. 매년 1등급 100마리를 납품한다. 마리당 가격이 1000만~1200만원으로 일반 한우(700만~800만원)보다 30~40% 비싸다. 소비자 가격이 15%가량 높지만 서울 압구정본점과 무역센터점 등 일부 매장에서만 판매해도 전량 소진될 정도로 인기다. 이번 추석 선물세트 판매전에서도 준비한 물량이 추석을 2주 앞두고 품절됐다.

이 대표의 관심은 더 엄격한 기준인 동물복지 농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 최초로 동물복지 한우 농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은 곳은 총 138곳이다. 한우와 육우 등 소고기를 생산하는 농장 중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곳은 없다.

산청=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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