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이어 셀트리온도 탈출… 코스닥, 중소형 '2부 리그'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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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코스닥
(上) 흔들리는 정체성
기관 외면·공매도 공세에 유망 대형주 이탈
성장기술주 시장 이미지 퇴색…위축 심화
미국 나스닥엔 애플·구글·MS·아마존 등 건재
(上) 흔들리는 정체성
기관 외면·공매도 공세에 유망 대형주 이탈
성장기술주 시장 이미지 퇴색…위축 심화
미국 나스닥엔 애플·구글·MS·아마존 등 건재
“됐다! 됐다!” “와!”
코스닥 ‘대장주’(시가총액 1위) 셀트리온의 임시 주주총회가 시작된 지 10분 뒤인 29일 오전 10시10분. 인천 송도컨벤시아 2층에 있는 주총장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유가증권시장으로의 이전상장 안건’ 통과가 확정돼서다.
1000개가량의 좌석을 가득 메운 주주들은 일제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50대 남성 주주는 “감개가 무량하다”며 이전 추진을 맡았던 소액주주 운영위원회 측에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이어진 질의 응답 시간은 주가 상승 기대에 부푼 주주 간 덕담의 장으로 변했다. 소액주주들이 느끼는 ‘코스닥 디스카운트(할인)’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47번째 이전상장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가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한 사례는 1996년 코스닥시장 탄생 이후 46건에 달한다. 엔씨소프트(2003년) 네이버(2008년, 당시 NHN) LG유플러스(2008년) 아시아나항공(2008년) 하나투어(2011년) 동서(2016년) 등 굵직한 기업들이 짐을 쌌다. 지난 7월엔 코스닥 시가총액 2위였던 카카오가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사했다. 셀트리온까지 둥지를 옮기기로 하면서 코스닥시장의 대형주 빈자리는 더욱 커지게 됐다.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17조4142억원으로 코스닥 전체의 7.74%에 달한다. 셀트리온이 떠나면 코스닥 상위 10개사의 시가총액 합계는 기존 약 44조원에서 27조원으로 쪼그라든다. 코스닥 대장주의 이전은 2008년 네이버 이후 9년 만이다.
코스닥 시가총액 2위 셀트리온헬스케어(7조5862억원)가 계열사 셀트리온의 행보를 따르거나 셀트리온과의 흡수합병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되면 CJ E&M(시가총액 2조9901억원)이 코스닥 대장주 역할을 맡게 된다.
◆“공매도에 지쳤다”
대형 코스닥 상장사들이 이전을 결정하는 핵심 배경 중 하나는 코스피200지수 편입이다.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기관투자가들의 주식 매수가 늘어나면서 지수 편입만으로 매수 기반을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기관 비중이 늘면 주가 변동성이 줄어 공매도 공세가 잦아들 것이란 기대도 높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해당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사들여 갚는 투자 방법이다. 주총장에 참석한 일부 셀트리온 주주들은 “공매도 창구로 자주 활용된 일부 대형 증권사들에는 이전상장 주관 업무를 맡겨선 안 된다”고 주장할 정도로 공매도에 큰 반감을 드러냈다.
다만 코스피200지수 편입이 실제 주가 상승과 공매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논란거리다. 네이버 엔씨소프트 카카오 등은 이전상장 후 3개월 동안 주가가 평균 16.9% 오르는 성과를 보였지만 동서와 한국토지신탁 등 일부 기업은 오히려 떨어졌다.
코스피200 편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이라면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이 높은 코스닥이 매력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닥 PER은 지난 28일 기준 14.5배(12개월 예상순이익 기준)로 유가증권시장의 9.4배보다 높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체 거래대금 중 공매도 비중도 코스닥(이달 평균 1.9%)보다 유가증권시장(5.8%)이 높다.
◆중소형 ‘레몬마켓’ 각인
대표 기업들의 이탈이 잦아지면서 미국 나스닥시장을 벤치마킹해 설립한 코스닥시장의 정체성도 크게 흔들리게 됐다. 김영환 KB증권 연구원은 “나스닥 시가총액 상위 1~5위 종목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으로 세계 상장기업 시가총액 순위와 일치한다”며 “나스닥은 기술주 지수인 동시에 대형주 중심인 반면 코스닥은 거의 모든 종목의 시가총액이 유가증권시장 상위 100종목보다 적다”고 꼬집었다.
지수도 글로벌 중소형주시장과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 들어 나스닥지수 상승률은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를 크게 웃돌고 있지만 중소형주 지수인 러셀2000은 코스닥처럼 S&P500을 밑돌고 있다. 김재준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코스닥시장에서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이전상장 허용 요건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호/은정진 기자 thlee@hankyung.com
코스닥 ‘대장주’(시가총액 1위) 셀트리온의 임시 주주총회가 시작된 지 10분 뒤인 29일 오전 10시10분. 인천 송도컨벤시아 2층에 있는 주총장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유가증권시장으로의 이전상장 안건’ 통과가 확정돼서다.
1000개가량의 좌석을 가득 메운 주주들은 일제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50대 남성 주주는 “감개가 무량하다”며 이전 추진을 맡았던 소액주주 운영위원회 측에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이어진 질의 응답 시간은 주가 상승 기대에 부푼 주주 간 덕담의 장으로 변했다. 소액주주들이 느끼는 ‘코스닥 디스카운트(할인)’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47번째 이전상장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가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한 사례는 1996년 코스닥시장 탄생 이후 46건에 달한다. 엔씨소프트(2003년) 네이버(2008년, 당시 NHN) LG유플러스(2008년) 아시아나항공(2008년) 하나투어(2011년) 동서(2016년) 등 굵직한 기업들이 짐을 쌌다. 지난 7월엔 코스닥 시가총액 2위였던 카카오가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사했다. 셀트리온까지 둥지를 옮기기로 하면서 코스닥시장의 대형주 빈자리는 더욱 커지게 됐다.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17조4142억원으로 코스닥 전체의 7.74%에 달한다. 셀트리온이 떠나면 코스닥 상위 10개사의 시가총액 합계는 기존 약 44조원에서 27조원으로 쪼그라든다. 코스닥 대장주의 이전은 2008년 네이버 이후 9년 만이다.
코스닥 시가총액 2위 셀트리온헬스케어(7조5862억원)가 계열사 셀트리온의 행보를 따르거나 셀트리온과의 흡수합병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되면 CJ E&M(시가총액 2조9901억원)이 코스닥 대장주 역할을 맡게 된다.
◆“공매도에 지쳤다”
대형 코스닥 상장사들이 이전을 결정하는 핵심 배경 중 하나는 코스피200지수 편입이다.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기관투자가들의 주식 매수가 늘어나면서 지수 편입만으로 매수 기반을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기관 비중이 늘면 주가 변동성이 줄어 공매도 공세가 잦아들 것이란 기대도 높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해당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사들여 갚는 투자 방법이다. 주총장에 참석한 일부 셀트리온 주주들은 “공매도 창구로 자주 활용된 일부 대형 증권사들에는 이전상장 주관 업무를 맡겨선 안 된다”고 주장할 정도로 공매도에 큰 반감을 드러냈다.
다만 코스피200지수 편입이 실제 주가 상승과 공매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논란거리다. 네이버 엔씨소프트 카카오 등은 이전상장 후 3개월 동안 주가가 평균 16.9% 오르는 성과를 보였지만 동서와 한국토지신탁 등 일부 기업은 오히려 떨어졌다.
코스피200 편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이라면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이 높은 코스닥이 매력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닥 PER은 지난 28일 기준 14.5배(12개월 예상순이익 기준)로 유가증권시장의 9.4배보다 높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체 거래대금 중 공매도 비중도 코스닥(이달 평균 1.9%)보다 유가증권시장(5.8%)이 높다.
◆중소형 ‘레몬마켓’ 각인
대표 기업들의 이탈이 잦아지면서 미국 나스닥시장을 벤치마킹해 설립한 코스닥시장의 정체성도 크게 흔들리게 됐다. 김영환 KB증권 연구원은 “나스닥 시가총액 상위 1~5위 종목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으로 세계 상장기업 시가총액 순위와 일치한다”며 “나스닥은 기술주 지수인 동시에 대형주 중심인 반면 코스닥은 거의 모든 종목의 시가총액이 유가증권시장 상위 100종목보다 적다”고 꼬집었다.
지수도 글로벌 중소형주시장과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 들어 나스닥지수 상승률은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를 크게 웃돌고 있지만 중소형주 지수인 러셀2000은 코스닥처럼 S&P500을 밑돌고 있다. 김재준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코스닥시장에서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이전상장 허용 요건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호/은정진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