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최근 삼성전자 애플 등 9개 글로벌 기업들을 ‘디지털 헬스케어 사전인증 파일럿 프로그램’ 참가업체로 선정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들과 의료·바이오 기술을 결합한 것이다. FDA는 9개 기업 신제품들에 대해 최소 1~2년 걸리는 임상시험을 간단한 인허가로 대체해 주기로 했다. 기술력과 신뢰성 높은 기업들의 최첨단 제품을 가장 빨리 시장에 내놔 디지털 헬스케어 세계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전략이 반영된 획기적 조치란 평가가 나온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국가가 나서 규제 개혁과 제도 개선, 인센티브 제공 등으로 관련 산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신기술 집합체로 불리는 원격의료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1997년 원격의료에 보험 혜택을 부여한 미국은 민관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원격의료에 AI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1997년 도서벽지 환자를 대상으로 제한적 원격의료를 실시한 일본은 2015년 전국으로 확대했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키우기에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정부는 방대한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고, 병원들은 세계 수준의 의료기술과 의료정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국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정보통신 인프라도 강점이다. 하지만 생명윤리법과 의료법 등이 금지하는 각종 규제 탓에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내놓을 혁신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도 국내에선 불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영리화의 전(前)단계”라는 의료계와 민주당 등의 주장에 막혀 원격의료는 수십 년째 시범사업만 하고 있다. 기본적인 생체정보 활용 서비스도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약했던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최근 출범시켰다. 위원회는 문 대통령이 요즘 강조하고 있는 ‘혁신성장’ 중·장기 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위원회가 이념과 정파(政派)의 이해득실이 아닌, 무엇이 신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