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중년 남자의 허리 같은 것이다. 내버려두면 반드시 늘어나게 돼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그제 ‘규제 혁파를 위한 현장 대화’가 열린 대전 KAIST에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및 중소·벤처기업인들을 만나 한 말이다.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규제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 대전제를 깔고 규제혁파 노력을 해도 성공할까 말까다”라고도 했다. 규제의 속성과 본질에 대한 촌철살인 비유를 통해 강력한 규제개혁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평가다.

이 총리는 또 “역대 정부가 규제 철폐, 규제 혁파 얘기를 안 한 경우가 없지만 아직 중요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 뽑기’ 구호를 앞세워,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뽑기’라는 이름으로 규제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 조사를 보면 기업 현장의 규제 체감도는 개선되지 않았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4년째 26위에 머물고 있는 데는 낮은 노동·금융경쟁력과 함께 정부 규제 및 정책 결정의 불투명성이 다른 점수를 갉아먹은 영향이 크다.

정부는 이달 초 규제 개혁의 큰 방향을 제시했다. 신산업·신기술 분야 규제를 혁파하고 일자리 창출을 막는 규제를 집중 개혁한다는 게 핵심이다.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선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기존 규제에도 불구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규제개혁 초점이 신산업 쪽에 치우친 점이 아쉽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좋은 일자리의 보고인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을 위한 규제해소 방안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4대 그룹 계열사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협력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납품단가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한경 9월28일자 A1, 3면). 대기업들도 대내외 경영 여건이 좋지 않지만, 어떻게든 협력사 생태계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고통분담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번엔 정부가 획기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대기업 경영 애로를 덜어주는 방안을 고려해봄 직하다. 본질을 꿰뚫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규제 혁파 다짐이 꼭 성과를 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