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 전시된 영국 미술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무제’.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 전시된 영국 미술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무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직사각형 색면 작품이 안내하는 세계를 무한한 영감의 원천으로 여겼다. 그는 로스코의 미학 철학인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을 애플의 디자인 철학으로 삼았다. 잡스처럼 많은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시각 예술을 건축, 디자인, 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모든 창조산업에 영감을 주는 ‘창의 엔진(creative engine)’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술에서 혁신정신과 고객을 행복하게 해주는 비법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기업인이 추석 연휴에 미술관을 찾아 그 실마리를 찾을 수는 없을까. 도슨트(미술해설사)의 설명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해본다면 문화적 소양을 쌓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크레이그 마틴의 역발상 경영

역발상·도전의식·사업 아이디어… 미술에서 얻어볼까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의 도전미학을 배울 수 있는 전시회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마련됐다. 치바이스는 농민화가로 시작해 거장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정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목공일을 하다 30대에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그는 중국 근현대미술을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회 주제를 ‘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우, 게, 개구리, 병아리, 쥐, 연꽃, 파초, 노인, 산수 등 평범한 소재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관찰과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해 사물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대표작 50여 점이 걸렸다. 천진난만하면서도 생기와 해학, 서민적 정서가 넘치는 동양화를 즐길 수 있다.

‘영국 현대미술의 아버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역발상 미학을 사업에 응용하고 싶다면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4, 5일 휴관)의 ‘올 인 올(All in All)’을 찾아보자.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전시장을 채운 30여 점의 대형 회화작품은 아이폰·노트북·무선 마우스·선글라스·자동차 운전대 등 주변의 평범한 사물들을 크기와 색깔만 변형해 새로운 의미를 떠오르게 형상화했다. 사물을 과감하게 확대해 일부만 보여주면서 관람객이 나머지를 채워넣도록 하는 접근법 역시 흥미롭다. 평범해 보이는 모든 사물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자인의 미래

상품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 산업디자인의 대중화를 위한 전시회도 열린다. 광주비엔날레전시장과 광주시립미술관 등에서 열리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기술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술과 창의적 디자인 1268종의 아이템이 나와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자인 트렌드를 미리 읽을 수 있다.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나를 디자인하라(Design Your Self)’전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마련됐다. 라시드의 초기 디자인 스케치부터 가르보 쓰레기통, 신발과 칫솔·가구 등 각종 생활용품, 설치작품 등 모두 350여 점이 걸렸다. “대중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디자인이 가장 좋은 디자인. 디자인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라시드의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훈민정음·난중일기-다시 바라보다’전은 우리 조상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사업에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시장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과 ‘난중일기’(국보 제76호), 이순신 장군이 벽에 걸어두고 바라봤던 칼인 장검(보물 제326호), 인조가 1643년 ‘충무공’이란 시호를 내린 교지인 증시교지(제1564호) 등이 나왔다. 조상의 유물을 감상하다 보면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정신을 어떻게 디지털문화로 계승할지 답을 찾을 수 있다.

건축을 예술영역으로 끌어들인 노하우를 알려주는 전시회도 놓칠 수 없다. 한국 현대건축의 격변기인 1980~1990년대를 조명하는 ‘종이와 콘크리트’전(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현대미술가들이 한국 전통 전각 덕수궁에 현대적인 매체를 접목해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빛·소리·풍경’전(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다. 건축미학을 감상하며 마음의 휴식과 활기찬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