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모레퍼시픽과 일본의 시세이도는 한·일 양국 화장품 시장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로레알(프랑스) 등 유럽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 아모레퍼시픽은 7위(작년 매출 기준), 시세이도는 5위에 이름을 올리며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글로벌 '맞짱 기업' 주가 리포트] 아모레, 사드 보복에 타격…시세이도 '반사익'
주식시장에서 두 회사는 동지이자 라이벌 관계다. 양국의 화장품 대표주로서 글로벌 화장품 시장 확대에 따른 수혜를 동시에 입으면서도 중국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어려움을 겪자 시세이도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중국에 울고 웃는 두 회사

시가총액 기준으로 시세이도가 아모레퍼시픽을 앞서고 있다. 시세이도 시가총액은 지난달 29일 기준 1조8008억엔(약 18조3888억원)으로 아모레퍼시픽(15조1700억원)보다 3조2000억원 많다.

사드 후폭풍이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아모레퍼시픽이 시세이도를 앞섰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을 등에 업고 파죽지세였다. 설화수 등이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시장 순위는 2015년 12위에서 지난해 7위로 도약했다.

하지만 사드 보복으로 중국 중심의 성장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아모레퍼시픽의 작년 매출에서 중국 사업이 차지한 비중은 30~40% 수준에 달한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면서 2분기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가량 줄어들었다. 아모레퍼시픽의 올해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2조7740억원과 4183억원으로 5.3%, 27.7% 줄었다.

아모레퍼시픽이 휘청이는 사이 시세이도는 반사이익을 톡톡히 봤다. 올 상반기 중국 시장에서 시세이도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보다 7.3% 증가했다. 상반기에 면세점 부문 영업이익은 32.2% 급증했다. 전체 영업이익은 14.5% 증가했다. 사드 보복 이후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일본으로 향한 영향이 컸다.

두 회사 주가는 실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지난해 7월8일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뒤 41% 급락한 반면 시세이도는 54% 급등했다.

◆‘시장 다각화’가 반등 열쇠

시세이도는 2012~2013년 중국과 일본 양국 간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2012년에 벌어진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중국 내 6000여 개 매장 중 250곳이 문을 닫았다. 영업이익은 2011년 444억엔에서 2013년 260억엔으로 2년 새 약 40% 감소했다.

시세이도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글로벌 브랜드 인수합병(M&A)을 통한 시장 다각화에 나섰다. 작년에 돌체앤가바나(이탈리아), 로라 메르시에(미국) 등 해외 브랜드를 잇따라 인수해 유럽과 미국 시장에 파고들었다. 시세이도의 작년 전체 매출 중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14.2%로 일본과 북미에 이어 3위였다.

아모레퍼시픽도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시장을 다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니스프리는 최근 미국 시장에 진출했고, 설화수는 프랑스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단독 매장을 열었다.

아모레퍼시픽의 단기간 급반등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사드 여파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시장 다각화가 성과로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간 주가 하락으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도 부각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32.3배로 시세이도(55.6배)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외국인 투자자금도 유입되고 있다. 싱가포르투자청은 지난 8월 말 아모레퍼시픽 지분 5.03%를 신규 취득한 데 이어 지난달 보유 지분을 6.04%로 늘렸다.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은 여전히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다”며 “실적 추세를 감안할 때 2018년 상반기에 본격적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