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을 시작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 미국측의 폐기 압박에 한국이 두 손을 든 형국이다. 본격 협상은 각각의 국내 절차를 거쳐 내년 초 시작될 것으로 관측된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한미 FTA 제2차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열어 협상한 뒤 개정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이는 지난 8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1차 공동위 이후 약 한달 반 만이다.

김 본부장은 협상 직후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다음주 국회에 (2차 공동위원회 결과를)보고, 설명하고 (개정 협상) 절차 개시를 위한 절차를 밟는다"고 말했다. 그는 개정 협상에 공식 착수한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들어가지는 않았다"면서 "개정 협상을 위한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한미 FTA 관련 양국의 관심사항을 균형 있게 논의했다"고 밝혔다.

FTA를 개정하려면 우리측은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통상절차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경제적 타당성 평가·공청회·국회보고 등 한미 FTA의 개정협상 개시에 필요한 제반 절차를 밟아야한다. 이런 절차를 밟는데는 통상 두달 가량 소요된다. 미국도 무역촉진권한법(TPA)에 따라 FTA 개정협상 개시 90일 전에 행정부가 의회에 통보해야 한다. 미국이 국내절차에 속도를 낼 경우 협상은 내년 초 개시될 수 있을 전망이다.

양국은 다음 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기간 통상장관 회담을 열어 개정협상 절차와 관련한 추가 논의를 할 예정이다. 이 때 양측 정상은 FTA 개정 협상을 시작하기로 하는 방안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미 FTA 폐기' 가능성까지 제기하는 등 미국은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전면 개정을 요구해왔지만 한국은 협정의 경제적 효과를 먼저 같이 분석하자고 맞섰었다. 하지만 지난 달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 폐기를 지시했다’는 미국측 보도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 달 문재인 대통령 방미 때 함께한 김 본부장은 미국측 주요인사들을 만난 뒤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하겠다'는 서한까지 다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폐기 위협이 실제적이고 임박해 있다. 블러핑(엄포)은 아닌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미 FTA는 2006~2007년 2년간 협상을 거쳐 조인됐으며 2012년 발효됐다. 양국간 무역규모는 1122억 달러에 달한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