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양법재판소장 백진현 교수 "해양이 중요한 한국, 국제법 전문가 많이 늘려야"
“국비 장학생 제도가 아니었다면 제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국제법 분야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선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합니다.”

지난 3일 한국인 최초로 국제해양법재판소 소장(임기 3년)에 선출된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59·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개인으로선 영광이지만 워낙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직책인 만큼 부담감이 훨씬 크다”며 이같이 말했다. 독일 함부르크에 본부가 있는 국제해양법재판소는 1996년 설립됐으며 국제형사재판소, 국제사법재판소와 더불어 세계 3대 국제재판소로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는 “국제해양법재판소장이란 자리는 168개에 이르는 국제해양법재판소 회원국 전체를 대표하고, 21명의 재판관 중 한 명으로서 공정한 재판을 맡는 게 임무”며 “‘한국인 최초’란 타이틀에 집착할 필요가 없고, 집착하고 싶지도 않고, 외부에서 너무 그런 시각으로만 나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백 소장이 해양법 연구의 길로 접어든 건 국비 유학생으로 선정돼 미국 컬럼비아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국제법과 해양법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초대 재판관이었던 박춘호 재판관의 별세에 뒤이은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그는 2009년부터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2014년엔 9년 임기의 재판관으로 재선됐다. 백 소장은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 적용과 관련된 분쟁 해결을 위해 세워졌다”며 “선박, 어업, 해양경제협정, 자원개발, 환경, 경계획정 등 해양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는 다 다룬다고 보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소장은 “보통 한 사건을 맡을 때 적어도 3년 정도 걸리는데, 분쟁 당사국끼린 수십 년간 해묵은 갈등인 경우가 많아 재판 과정에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그래도 재판을 통해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결론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해양법 연구 수준이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높지만, 20~30대의 젊은 인재들이 이 분야에 별로 관심이 없어 너무나 아쉽다”고 토로했다. “법률가를 꿈꾸는 절대다수의 한국 청년들이 지금도 국내에서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되는 걸 선호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국제법 분야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선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해요. 한국은 지정학적 특징도 그렇고, 주변국과의 관계도 그렇고 해양의 중요성이 그 어느 나라보다 큽니다. 그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인재의 샘물이 점점 말라 갑니다.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는 젊은 법조인들이 이 분야에 많이 뛰어들길 희망합니다. 분명 있으리라 믿고 있어요.”

백 소장은 “너무 대세만 좇으려 하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 ‘이 길이 옳다’ 싶으면 그렇게 가는 게 좋다”며 “언어를 비롯해 해외 진출의 장벽을 너무 높게만 보는데 막상 부딪쳐 보면 한국 인재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 “비단 정식으로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국제관계 연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국제법, 해양법 등의 기본 지식을 알아둬야 제대로 정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저변 확대에도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