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추석민심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우원식 원내대표. 연합뉴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추석민심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우원식 원내대표. 연합뉴스
여야가 추석 연휴 이후 ‘적폐청산’을 둘러싼 대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12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적폐청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국정 역량을 총집중할 태세다. 야당은 ‘정치보복’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여야 간 협치는 점점 어려워지고 새 정부의 민생 정책도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정치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與 “추석 민심도 적폐청산”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추석민심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이 민주당에 전달한 민심의 핵심은 역시 ‘적폐를 제대로 청산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은 정치보복이라 규정하고 반발하는데 국민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로 국가 기강을 바로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 적폐청산위원장인 박범계 의원도 지난 8일 페이스북에서 “우리 국민의 최대 요구와 관심사는 적폐청산임을 부인할 수 없다”며 “민주당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적폐청산의 기치를 더 높이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는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달 28일 이명박(MB) 정부 시절 청와대 등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을 무더기로 폭로하며 보수 야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민주당은 12일부터 시작될 국정감사를 통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장악 시도, 최순실 국정농단, 문화계 블랙리스트, 국가기관을 동원한 정치 댓글 공작 등에서 적폐청산의 압박 강도를 높여나갈 방침이다.

◆적폐 찾는 데 매달린 부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각 부처에 개혁위원회나 적폐청산 관련 태스크포스(TF) 등 조직은 14개에 달한다. 국방부 내 군 적폐청산위원회, 군 의문사 조사·제도개선추진단, 5·18 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 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국방개혁추진단 등 5개를 비롯해 7개 부처가 관련 조직을 한두 개씩 두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적폐청산 TF, 국방부는 사이버사령부 댓글사건 재조사 TF,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앞장서고 있다.

외교부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역시 시계를 수년 전으로 돌리고 있다.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다른 부처들도 내부적으로 과거 정책 검증 TF 구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19개 정부 부처에 ‘적폐청산을 위한 부처별 TF 구성 현황과 향후 운영 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상당수 부처가 1급 인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솎아내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탓이다. 그 여파로 새 정부의 정책을 집행하는 데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생은 뒷전

민주당은 지난 8월17일 14명의 위원이 참여한 당내 특별조직으로 적폐청산위를 출범시켰다. 국정원, 검찰, 경찰, 언론, 방산, 4대강 사업 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점검한 뒤 과거사 청산을 위한 입법도 추진할 예정이다. 박범계 위원장은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정치보복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불법을 가려내 마땅한 처벌을 받도록 만들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적폐청산의 칼끝이 MB를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놓고 당정이 야당과 각을 세우면서 협치를 위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출범은 표류하고 있다. 민주당이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기로 한 공통공약 과제나 민생 법안의 국회 통과도 불투명하다. 야당의 협조와 지원 없이는 정책 입법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여소야대 국면이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하에 각종 TF가 여당에 정보를 흘리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상황”이라며 “국정 에너지가 과거에 집중돼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과 제도를 개혁해야 하는데, 특정 정권과 인물을 향한 공격은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정환/김기만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