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20년 우린 달라졌나
은행 퇴출 → IT기업 재취업 → 실직 → 치킨집 창업 → 신불자
"지난 20년간 경제적으로 뒷걸음질 치기만 했다"
김씨는 다음날부터 명동성당으로 출근했다. 동료들과 함께 은행 퇴출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3개월을 살았지만, 결국 은행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몇 푼 안 되는 퇴직금도 자사주 매입을 위해 빌린 돈을 갚는 데 거의 들어갔다.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6개월간 구직활동의 결과는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 전산 계약직. 은행 다닐 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봉급은 어린 두 딸을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고 회사에 처우 개선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건 계약직이라는 냉대와 권고사직뿐이었다.
어둠의 끝에서 실낱같은 기회는 찾아왔다.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 생겨난 조그만 벤처기업에 일자리를 얻은 것. 하지만 벤처기업 신화는 채 2년도 못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30대 중반이 넘어선 김씨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지막 승부수로 은행 다닐 때 마련한 집을 담보 잡아 2006년 치킨집을 열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터지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가게 운영은 어려워져만 갔다. 카드빚을 돌려가며 유지했던 가게를 접은 것은 2015년. 김씨에게 남은 건 6000만원에 달하는 채무와 신용불량자라는 족쇄뿐이었다. 김씨는 “은행이 없어진 뒤 20년간 사회 경제적으로 뒷걸음치기만 했다”며 “당시 같이 은행을 관둔 대다수 동료가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