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20년… 다시 커지는 '국가 위기'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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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창간 53
양적 성장에도 고비용·저효율 지속
반도체 빼면 주력산업 갈수록 위축
더 늦기 전에 경제체질 확 바꿔야
공공·노동부문은 '미완의 개혁'으로 남아
양적 성장에도 고비용·저효율 지속
반도체 빼면 주력산업 갈수록 위축
더 늦기 전에 경제체질 확 바꿔야
공공·노동부문은 '미완의 개혁'으로 남아
1997년 위기는 한발 한발 다가왔다.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삼미 진로 기아 해태 뉴코아가 차례로 쓰러졌다.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아시아를 휩쓸고 있었다. 정부는 “한국은 다르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외국인은 한국에서 서둘러 자금을 빼갔고 외환 금고는 빠르게 비어갔다. 결국 그해 11월21일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외환위기는 따지고 보면 고비용·저효율이 근본 원인이었다. 당시 한국은 기술은 일본에, 가격은 중국에 밀리는 샌드위치 신세였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무리한 차입경영을 계속했고 금융회사들은 동반 부실에 빠졌다. 이를 견제할 금융감독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87년 체제’ 이후 거세진 민주화 바람을 타고 노동 비용은 빠르게 불어났다. 개혁이 절실했지만 리더십은 실종된 지 오래였다. 해외에서 한국은 말만 하고 행동은 없는 ‘NATO(No Action Talk Only) 국가’로 불렸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당시와 비교하면 ‘달러 부족’에 따른 환란(換亂) 가능성은 줄었다. 1997년 말 204억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은 지난 8월 말 3848억달러로 늘었다. 경상수지는 당시 4년째 적자가 누적됐지만 지금은 66개월 연속 흑자가 이어지고 있다. 30대 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은 518%에서 78%로 낮아졌다.
하지만 새로운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다시 커지고 있다. 양적 팽창에도 질적인 변화는 찾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는 여전하다. 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조선, 자동차, 화학 등 주력 산업 경쟁력 저하는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이끈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우리가 걸었던 근대화의 길을 우리보다 몇십배 큰 중국이 걸어가면서 필연적으로 우리와 경쟁적 대체 관계가 되고 있는 게 가장 큰 위협 요인”이라며 “이미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애써 위기를 외면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추진한 4대 부문 개혁(기업·금융·공공·노동 개혁)은 지금껏 ‘미완의 개혁’으로 남아 있다. 한 전직 관료는 “기업과 금융 부문만 찔끔 손질했을 뿐 공공과 노동 부문 개혁은 기득권의 반발에 밀려 거의 손도 못 댔다”고 지적했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불안 요인도 생겨났다. 저성장 기조가 굳어졌고 복지 지출과 국가 부채는 빠르게 늘고 있다.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됐다.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 같은 대변화가 다가오고 있지만 대응책 마련은 더디다. 보수·진보 갈등이 심해지면서 사회 통합은 더 어려워졌다. 대외적으론 북핵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고 미국과 중국에서 보호무역이 힘을 얻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환보유액 같은 몇 가지 지표를 빼면 20년 전보다 더 나빠진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위기를 알고 있을 땐 아무것도 아닌데 위기를 외면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면 진짜 위기가 된다”고 했다. 20년 전 한국이 그랬다. 지금 한국은 그때에 비해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외환위기는 따지고 보면 고비용·저효율이 근본 원인이었다. 당시 한국은 기술은 일본에, 가격은 중국에 밀리는 샌드위치 신세였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무리한 차입경영을 계속했고 금융회사들은 동반 부실에 빠졌다. 이를 견제할 금융감독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87년 체제’ 이후 거세진 민주화 바람을 타고 노동 비용은 빠르게 불어났다. 개혁이 절실했지만 리더십은 실종된 지 오래였다. 해외에서 한국은 말만 하고 행동은 없는 ‘NATO(No Action Talk Only) 국가’로 불렸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당시와 비교하면 ‘달러 부족’에 따른 환란(換亂) 가능성은 줄었다. 1997년 말 204억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은 지난 8월 말 3848억달러로 늘었다. 경상수지는 당시 4년째 적자가 누적됐지만 지금은 66개월 연속 흑자가 이어지고 있다. 30대 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은 518%에서 78%로 낮아졌다.
하지만 새로운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다시 커지고 있다. 양적 팽창에도 질적인 변화는 찾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는 여전하다. 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조선, 자동차, 화학 등 주력 산업 경쟁력 저하는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이끈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우리가 걸었던 근대화의 길을 우리보다 몇십배 큰 중국이 걸어가면서 필연적으로 우리와 경쟁적 대체 관계가 되고 있는 게 가장 큰 위협 요인”이라며 “이미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애써 위기를 외면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추진한 4대 부문 개혁(기업·금융·공공·노동 개혁)은 지금껏 ‘미완의 개혁’으로 남아 있다. 한 전직 관료는 “기업과 금융 부문만 찔끔 손질했을 뿐 공공과 노동 부문 개혁은 기득권의 반발에 밀려 거의 손도 못 댔다”고 지적했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불안 요인도 생겨났다. 저성장 기조가 굳어졌고 복지 지출과 국가 부채는 빠르게 늘고 있다.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됐다.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 같은 대변화가 다가오고 있지만 대응책 마련은 더디다. 보수·진보 갈등이 심해지면서 사회 통합은 더 어려워졌다. 대외적으론 북핵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고 미국과 중국에서 보호무역이 힘을 얻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환보유액 같은 몇 가지 지표를 빼면 20년 전보다 더 나빠진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위기를 알고 있을 땐 아무것도 아닌데 위기를 외면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면 진짜 위기가 된다”고 했다. 20년 전 한국이 그랬다. 지금 한국은 그때에 비해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