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등판한 김조원 "KAI, 비리 낙인 씻고 경영 정상화에 총력"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이사 사장에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사진)이 내정됐다. 방산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경영 위기에 몰린 KAI에 금융감독원장이 유력하던 실세 관료 출신을 긴급 투입, 경영정상화에 나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경영공백에 분식회계 의혹에 따른 유동성 위기까지 겹치며 ‘흑자도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KAI도 한숨 돌리게 됐다.

◆정부, 전격 인사 단행

KAI는 10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김 전 총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김 내정자는 오는 25일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어 임기 3년의 제6대 KAI 사장으로 공식 취임하게 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KAI가 검찰수사 이후 분식회계, 원가조작 등의 혐의로 비리 조직으로 오해받다 보니 이를 해결할 적임자를 찾는 과정에서 김 전 총장이 추천됐다”고 말했다.
구원 등판한 김조원 "KAI, 비리 낙인 씻고 경영 정상화에 총력"
KAI 대주주는 수출입은행(지분 26.4%)과 국민연금(8.04%)으로 사실상 정부가 인사권을 보유하고 있다. 행정고시(22회) 출신인 김 내정자는 1985년부터 23년간 감사원에서 근무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역임하며 당시 민정수석인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지난 7월 감사원으로부터 국산 헬기 수리온의 전력화 중단 통보를 받은 KAI는 감사원 출신의 정권 실세가 사장으로 오게 됨에 따라 검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과의 원만한 조율을 통해 현 위기를 타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AI 노동조합 관계자도 “해외 매출 비중이 60%가 넘는 KAI 특성상 군 출신보다 관료 출신이 적합하다”며 이번 인사에 찬성의사를 밝혔다.

◆자격 논란에 “경영·행정 전문가” 반박

김 내정자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총체적 위기에 휩싸인 KAI를 구하려면 항공, 방산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관련 분야의 문외한이라는 비판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는 “정부와 협력해 세계 시장에 우수한 고등훈련기와 항공기부품을 납품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능력과 행정경험, 정부와의 교감 등이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에서 쌓은 경영능력과 오랜 감사원 근무 경험을 통해 부족한 전문성을 만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2009~2012년 경남 진주에 있는 경남과학기술대 총장을 맡으면서 인근 사천시에 있던 KAI 측과 교류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건국대 석좌교수로 회계학을 강의해온 그는 KAI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계가 전공인 만큼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왜곡된 정보는 없는지 등을 면밀하게 볼 것”이라며 “적법한 회계 처리는 KAI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모든 대기업의 문제”라고 말했다.

취임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에 대해선 “경영투명성을 높여 KAI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직원들의 떨어진 사기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또 “‘방산=비리’라는 여론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며 “국민의 신뢰를 받는 KAI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국산 헬기(수리온), 고등훈련기(T-50)를 납품하고 차세대 전투기(KFX) 개발사업을 주도해 공중전의 핵심 전력을 공급하는 국내 유일 항공기 제조회사로서 자부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중단된 KAI 지분 매각에 대해서는 “당장 매각은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을 아꼈다.

◆경영 불확실성 해소되나

김 내정자의 사장 선임이 알려지면서 이날 KAI 주가는 9.15% 수직상승하며 4만7700원에 장을 마쳤다. KAI 주식은 지난 6월 6만원 안팎에서 거래됐으나 7월에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3만6900원(종가 기준)까지 하락했다.

증권업계는 한국항공우주의 하반기 이익을 추정하기 어려워 추가 상승을 속단하기 어렵다면서도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탄탄하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글로벌 자산투자자문사인 블랙록 펀드 어드바이저스는 8월 KAI 보유 지분을 5.01%에서 6.50%로 늘리기도 했다.

방산업계에선 김 내정자의 최우선 과제로 역대 최대 방산 입찰로 불리는 미국 공군 고등훈련기(APT) 사업 수주를 꼽았다. 연말 입찰 결과 발표를 앞두고 KAI는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국 보잉과 스웨덴 사브컨소시엄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 소형무장·민수헬기(LAH/LCH)사업과 항공정비(MRO)사업을 비롯해 독자 민항기 개발사업도 차질없이 추진해 ‘2030년 매출 20조원 달성, 세계 6위권 항공업체로 도약’이라는 장기 비전도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안대규/박재원/박종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