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재 서울대 교수 "계량경제학으로 불확실한 상황 속 경제주체의 합리적 선택 유도"
내가 대학을 다닌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은 한국이 정치적으로 큰 변동을 겪을 때였다. 당시 잦은 휴교 등 여러 이유로 학부 시절엔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못했다.

졸업을 앞두고 장래를 고민하던 중 경제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석사과정에 진학하고 학업에 매진하다 보니 경제학이 과학적이고 현실 설명력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계속 공부하는 학자의 삶이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미국 박사과정에 진학한 뒤 한국 석사과정에서 전공한 거시경제학은 그 학교에선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 1980년대 중·후반은 세계적으로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시기였다.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미국 학교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그 무렵 예일대에선 세계적인 석학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피터 필립스 교수와 도널드 앤드루스 교수 등이 계량경제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 전통을 이어 현재도 예일대는 세계 계량경제학계의 중심에 있다.

박사과정에서 수강한 두 교수의 강의는 명쾌했다. 그간 지니고 있던 사전 지식이 보잘것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특히 앤드루스 교수는 당시 막 테뉴어(정년 보장)를 받은 비교적 젊은 교수였다. 계량경제학에 비모수적 방법론을 도입하는 선구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있었다. 난 앤드루스 교수의 첫 제자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계량경제학 분야 중 비모수적 추론 방법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해왔다. 계량경제학은 추상적인 경제이론 혹은 가설에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은 경제 변수 간 관계를 나타내는 소위 경제 모형을 통해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의 경제 현상을 예측한다. 경제 모형이 지나치게 단순한 형태를 취하면 분석은 편리하겠지만 경우에 따라 현실 경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

비모수적 접근법은 경제 모형 설정에서 연구자의 자의적 가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관측 자료가 보유한 모든 정보를 최대한 반영하고자 한다. 이런 특성은 이른바 ‘자료가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문장으로도 표현된다. 비모수적 접근법은 계량경제학계에서 1980년대 후반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는 확률적 지배 관계의 검정법이다. 확률적 지배 관계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변수 간 관계를 그들의 확률 분포의 직접적인 비교를 통해 판단하는 것이다. 확률 분포의 여러 특성 중 평균 혹은 분산만 비교하는 통상적인 모수적 접근법과 달리 확률적 지배 관계는 확률 분포 전체의 특성을 비교하는 것이어서 비모수적 접근법에 해당한다.

확률적 지배 관계는 경제학에서 핵심적 주제인 ‘불확실성하에서 경제주체의 합리적인 선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확률적 지배 관계의 개념은 여러 선택 가능성이 있을 때 합리적인 의사결정자의 최적의 선택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따라서 이 개념은 경제학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다.

■ 약력

△1960년생 △198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6년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1991~1992년 캐나다 토론토대 경제학과 조교수 △1992~2003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2003~2005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05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주요 활동

△1992년 한국계량경제연구회 창립위원 △2007~2009년 서울대 세계경제연구소장 △2010년 세계계량경제학회 종신석학회원 선출 △2012~2013년 한국은행 학술 자문교수 △2012년~ 서울대 경제연구소 계량경제연구센터 소장 △2015~2016년 한국계량경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