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를 돌아보는 한경의 ‘換亂(환란) 20년’ 기획은 지금 우리 경제가 맞닥뜨린 문제를 두루 짚고 있다.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비용·저효율이 지속되고,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 산업이 위축세를 보이며,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노동·경영 환경은 악화됐다는 분석 등이 그렇다.

지표 분석보다 더 두려운 것은 외부전문가들 진단이다. 한국에 구제금융을 집행한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는 한경과의 인터뷰에서 “10년 안에 한국이 심각한 양상의 시스템 위기에 빠질 우려가 있다”며 “급속한 고령화, 미진한 기업 구조조정, 노동시장 왜곡이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IMF 대표단장이던 휴버트 나이스 전 아태국장도 “구조적 취약점을 고치지 않으면 신뢰를 다시 잃을 수 있고, 시장 신뢰를 잃으면 외자는 순식간에 빠져나간다”고 충고했다.

1997년 말 204억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이 3848억달러(8월 말 현재)로 늘었으니 당장 외환의 유동성 위기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팽창하는 복지와 비대해지는 공공부문을 보면 남유럽국가들(PIIGS)의 재정위기를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조선업과 중소 ‘좀비기업’들도 불안지대이고, 유난히 많은 개인사업자의 부채 증가도 취약점이다. 어디서, 어떻게 ‘검은 백조’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위기다.

캉드쉬 전 총재가 지적한 시스템 위기를 예방할 방법은 전 방위에 걸친 과감한 구조개혁뿐이다. 그는 노동시장과 금융을 개혁이 필요한 부문으로 적시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부터 ‘양대지침’ 폐기 등 일련의 노동정책은 상식적 개혁과는 다른 방향이다. 내년에 16.4% 오르는 최저임금 문제에서는 1988년(17.6%)~1995년(15.1%) 임금상승률이 매년 두 자릿수로 뛴 사실과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간 경제성장률은 연 5.9~9.2%였다. 성장을 크게 웃도는 임금 급등 이후 경제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노사정위원회 체제조차 복원되지 않고 있다.

공공일자리 81만 개 증대 등으로 커지는 공공부문은 경제에 지속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다. ‘야경(夜警)국가론’ 이래 공공의 비효율 제거는 많은 국가의 숙제였지만 웬만한 의지로는 달성이 쉽지 않다. 재정 건전화와 효율적 정부는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 모두의 문제다. 안보불안 와중에 나오는 경제위기 경고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