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진행 중인 대우그룹 해체… 기업 구조조정 실패 '20년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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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창간 53주년
외환위기 20년 우린 달라졌나
(3) 끝나지 않은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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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끝나지 않은 트라우마
대우그룹이 해체의 길로 들어선 건 외환위기가 터지고 2년 뒤인 1999년. 당시 11개 계열사는 통째로 팔리거나 사업 부문별로 분할 매각되면서 각자의 길을 갔다. 한 번에 주인이 바뀌어 정착한 곳도 있고, 두세 번 새 주인을 만나 겨우 자리 잡은 곳도 있다. 하지만 계열사 세 곳은 여전히 최적의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구조조정 전문가들은 대우그룹 해체 20년은 한국 기업 구조조정 실패의 역사 20년의 축소판이라고 입을 모은다.
◆17년째 산업은행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
2000년대 조선업 호황 속 쏠쏠한 배당금에 취한 산업은행
뒤늦게 대우조선 매각 나섰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불발
수주절벽으로 경영난 심화…3년새 들어간 공적자금 13조 2000년 산업은행 자회사가 된 대우조선해양은 대표적인 구조조정 실패 사례로 꼽힌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받고서도 여전히 부실기업이라는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다. 느슨한 산은의 관리와 방만했던 대우조선 경영인의 합작품이라는 게 구조조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00년 이후 조선경기 호황 속에 대주주(지분 57%)인 산은은 2000억원을 웃도는 배당금을 챙겼다. 산은이 매각을 서두르지 않은 이유다. 산은은 2008년을 매각 시점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매각 협상은 결렬됐다. 매각 시점을 늦춘 게 화근이었다. 6조3200억원을 써내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힌 한화는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 이후 조선경기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대우조선은 올해로 17년째 채권단 자회사로 있다.
주인 없는 회사의 경영은 방만했다. 사장 연임을 위해 청와대와 금융당국, 정치권에 로비를 벌였고 낙하산 인사가 잇따랐다. 대우조선은 2000년 이후 전직 고위 관료와 예비역 장성, 대우조선 퇴직 임원 등 60여 명에게 100억원이 넘는 급여를 지급했다.
업황 부진에 따른 ‘수주절벽’까지 겹친 대우조선은 2015년 7월 3조원대 영업손실이 확인됐고, 채권단은 그해 10월 4조2000억원을 시작으로 이듬해 12월에도 2조8000억원을 출자 전환해줬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지난해 8월 “한국 조선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이른바 ‘빅2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하지만 대우조선과 산은이 반발하면서 최종안은 공개되지 못했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대우조선 퇴출에는 소극적이었다.
결국 정부와 산은은 지난 3월 출자전환과 신규 자금 지원 등 5조8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3년 새 대우조선에 쏟아부은 돈만 13조원에 달한다.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등 국내 조선사들의 주력 선종 발주가 급감한 상황에서 경쟁 조선사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으로 대우조선의 부실이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팔아도 걱정인 대우차와 대우전자
2002년 대우차 인수한 GM, 적자 늘어 자본잠식 상태
이달 지분처분 제한 해제…15년 만에 '철수설' 솔솔
동부대우전자 해외매각 추진…국내공장 폐쇄 가능성 옛 대우자동차가 전신인 한국GM은 매각 15년 만에 철수설에 시달리고 있다. 2002년 인수계약을 통해 GM 본사가 갖고 있는 한국GM 지분(76.96%) 처분 제한이 이달 해제되기 때문이다. GM은 2002년 대우차를 인수하면서 15년간 경영권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17.02%)은 “GM 본사가 철수를 결정하더라도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고 손을 놓은 상태다.
GM은 수익이 나지 않는 해외 시장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있다. 2013년부터 호주와 인도네시아, 러시아에서 잇따라 공장 문을 닫았다. 지난 3월에는 유럽 오펠 브랜드를 프랑스 자동차그룹 PSA에 넘기기로 했다. 5월에는 인도 내수시장에서 철수했다. 한국GM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가 2조원이 넘어 올 1분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GM 본사는 특히 노사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이 철수하면 1만6000명이 일자리를 잃고 협력업체를 포함해 30만 명가량이 영향권에 들어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KTB프라이빗에쿼티 등 재무적투자자(FI)가 매각을 추진 중인 동부대우전자도 해외 업체에 인수될 경우 광주공장 등 국내 사업장 폐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동부그룹은 2013년 회사를 인수하면서 인수 대금(2750억원)의 절반인 1350억원을 FI에서 유치했다. FI는 2016년까지 순자산 1800억원을 유지하고, 2018년까지 기업공개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동부그룹이 이 조건을 못 맞출 경우 FI들이 재매각할 권한을 갖기로 했다. 동부대우의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은 1634억원에 그쳤고, 2014년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성과 지표가 미흡해 주식시장 상장도 어려워졌다.
문제는 국내 업체들은 인수에 관심이 없고, 해외 후보들은 멕시코 등 동부대우의 해외 자산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냉장고, 세탁기 등을 생산하는 광주공장에는 동부대우전자 직원과 하도급업체 직원 1500명이 일하고 있고 협력업체 임직원도 7000명에 달한다. 2013년 동부그룹이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할 당시 인수전에 참여한 세계 3위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는 “광주공장에는 관심이 없고, 본사와 멕시코 공장 등 해외 사업장만을 인수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대우건설 매각 둘러싼 '승자의 저주'
시장가보다 높은 6조에 대우건설 인수한 금호아시아나
차입금 늘며 자금조달 어려움 겪자 2009년 결국 재매각
금호산업 등 멀쩡했던 계열사까지 워크아웃 신세 대우건설 인수합병(M&A)은 ‘승자의 저주’(비싸게 인수한 대가로 후유증을 겪으면서 곤경에 처하는 현상)라는 말을 남기며 10여 년째 산업은행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00년 (주)대우의 건설부문 분할로 설립된 대우건설은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을 거쳐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문제는 시장가격보다 높은 인수가격. 금호아시아나는 자산관리공사 등 채권단이 가진 지분 72.1%를 6조4255억원에 인수했다. 주당 인수가격은 2만6980원으로 입찰 직전 대우건설 주가(1만3700원)의 두 배에 가깝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시장가보다 1조원 이상 비싼 가격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었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금호아시아나는 인수금액의 절반을 웃도는 3조5299억원을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차입했다. 그 대신 FI에 대우건설 지분 39.6%를 담보로 내놓으면서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주당 3만1500원을 밑돌면 금호아시아나가 그 값에 주식을 되사겠다는 ‘풋백옵션’ 계약을 맺었다.
시장에선 대우건설의 기업 가치로는 달성이 쉽지 않은 조건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와중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2009년 말 대우건설 주가는 1만2000원대까지 떨어졌다. 금호아시아나가 갚아야 할 돈은 4조원까지 불어났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재매각했고, 멀쩡했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 주요 계열사까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산은이 ‘혹(대우건설) 떼려다 오히려 혹(금호산업, 금호타이어)만 붙이는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7년 만인 이번 재매각도 벌써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산은은 2010년 금호아시아나로부터 대우건설을 주당 1만8000원에 인수했지만 현재 주가는 7000원 수준에 그친다. 이대로라면 산은이 투입한 3조2000억원(지분 50.75%) 중 절반가량의 공적 자금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김보형/김순신 기자 kph21c@hankyung.com
◆17년째 산업은행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
2000년대 조선업 호황 속 쏠쏠한 배당금에 취한 산업은행
뒤늦게 대우조선 매각 나섰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불발
수주절벽으로 경영난 심화…3년새 들어간 공적자금 13조 2000년 산업은행 자회사가 된 대우조선해양은 대표적인 구조조정 실패 사례로 꼽힌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받고서도 여전히 부실기업이라는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다. 느슨한 산은의 관리와 방만했던 대우조선 경영인의 합작품이라는 게 구조조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00년 이후 조선경기 호황 속에 대주주(지분 57%)인 산은은 2000억원을 웃도는 배당금을 챙겼다. 산은이 매각을 서두르지 않은 이유다. 산은은 2008년을 매각 시점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매각 협상은 결렬됐다. 매각 시점을 늦춘 게 화근이었다. 6조3200억원을 써내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힌 한화는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 이후 조선경기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대우조선은 올해로 17년째 채권단 자회사로 있다.
주인 없는 회사의 경영은 방만했다. 사장 연임을 위해 청와대와 금융당국, 정치권에 로비를 벌였고 낙하산 인사가 잇따랐다. 대우조선은 2000년 이후 전직 고위 관료와 예비역 장성, 대우조선 퇴직 임원 등 60여 명에게 100억원이 넘는 급여를 지급했다.
업황 부진에 따른 ‘수주절벽’까지 겹친 대우조선은 2015년 7월 3조원대 영업손실이 확인됐고, 채권단은 그해 10월 4조2000억원을 시작으로 이듬해 12월에도 2조8000억원을 출자 전환해줬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지난해 8월 “한국 조선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이른바 ‘빅2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하지만 대우조선과 산은이 반발하면서 최종안은 공개되지 못했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대우조선 퇴출에는 소극적이었다.
결국 정부와 산은은 지난 3월 출자전환과 신규 자금 지원 등 5조8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3년 새 대우조선에 쏟아부은 돈만 13조원에 달한다.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등 국내 조선사들의 주력 선종 발주가 급감한 상황에서 경쟁 조선사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으로 대우조선의 부실이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팔아도 걱정인 대우차와 대우전자
2002년 대우차 인수한 GM, 적자 늘어 자본잠식 상태
이달 지분처분 제한 해제…15년 만에 '철수설' 솔솔
동부대우전자 해외매각 추진…국내공장 폐쇄 가능성 옛 대우자동차가 전신인 한국GM은 매각 15년 만에 철수설에 시달리고 있다. 2002년 인수계약을 통해 GM 본사가 갖고 있는 한국GM 지분(76.96%) 처분 제한이 이달 해제되기 때문이다. GM은 2002년 대우차를 인수하면서 15년간 경영권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17.02%)은 “GM 본사가 철수를 결정하더라도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고 손을 놓은 상태다.
GM은 수익이 나지 않는 해외 시장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있다. 2013년부터 호주와 인도네시아, 러시아에서 잇따라 공장 문을 닫았다. 지난 3월에는 유럽 오펠 브랜드를 프랑스 자동차그룹 PSA에 넘기기로 했다. 5월에는 인도 내수시장에서 철수했다. 한국GM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가 2조원이 넘어 올 1분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GM 본사는 특히 노사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이 철수하면 1만6000명이 일자리를 잃고 협력업체를 포함해 30만 명가량이 영향권에 들어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KTB프라이빗에쿼티 등 재무적투자자(FI)가 매각을 추진 중인 동부대우전자도 해외 업체에 인수될 경우 광주공장 등 국내 사업장 폐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동부그룹은 2013년 회사를 인수하면서 인수 대금(2750억원)의 절반인 1350억원을 FI에서 유치했다. FI는 2016년까지 순자산 1800억원을 유지하고, 2018년까지 기업공개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동부그룹이 이 조건을 못 맞출 경우 FI들이 재매각할 권한을 갖기로 했다. 동부대우의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은 1634억원에 그쳤고, 2014년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성과 지표가 미흡해 주식시장 상장도 어려워졌다.
문제는 국내 업체들은 인수에 관심이 없고, 해외 후보들은 멕시코 등 동부대우의 해외 자산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냉장고, 세탁기 등을 생산하는 광주공장에는 동부대우전자 직원과 하도급업체 직원 1500명이 일하고 있고 협력업체 임직원도 7000명에 달한다. 2013년 동부그룹이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할 당시 인수전에 참여한 세계 3위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는 “광주공장에는 관심이 없고, 본사와 멕시코 공장 등 해외 사업장만을 인수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대우건설 매각 둘러싼 '승자의 저주'
시장가보다 높은 6조에 대우건설 인수한 금호아시아나
차입금 늘며 자금조달 어려움 겪자 2009년 결국 재매각
금호산업 등 멀쩡했던 계열사까지 워크아웃 신세 대우건설 인수합병(M&A)은 ‘승자의 저주’(비싸게 인수한 대가로 후유증을 겪으면서 곤경에 처하는 현상)라는 말을 남기며 10여 년째 산업은행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00년 (주)대우의 건설부문 분할로 설립된 대우건설은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을 거쳐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문제는 시장가격보다 높은 인수가격. 금호아시아나는 자산관리공사 등 채권단이 가진 지분 72.1%를 6조4255억원에 인수했다. 주당 인수가격은 2만6980원으로 입찰 직전 대우건설 주가(1만3700원)의 두 배에 가깝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시장가보다 1조원 이상 비싼 가격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었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금호아시아나는 인수금액의 절반을 웃도는 3조5299억원을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차입했다. 그 대신 FI에 대우건설 지분 39.6%를 담보로 내놓으면서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주당 3만1500원을 밑돌면 금호아시아나가 그 값에 주식을 되사겠다는 ‘풋백옵션’ 계약을 맺었다.
시장에선 대우건설의 기업 가치로는 달성이 쉽지 않은 조건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와중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2009년 말 대우건설 주가는 1만2000원대까지 떨어졌다. 금호아시아나가 갚아야 할 돈은 4조원까지 불어났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재매각했고, 멀쩡했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 주요 계열사까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산은이 ‘혹(대우건설) 떼려다 오히려 혹(금호산업, 금호타이어)만 붙이는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7년 만인 이번 재매각도 벌써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산은은 2010년 금호아시아나로부터 대우건설을 주당 1만8000원에 인수했지만 현재 주가는 7000원 수준에 그친다. 이대로라면 산은이 투입한 3조2000억원(지분 50.75%) 중 절반가량의 공적 자금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김보형/김순신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