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 주방장은 처음 서양음식을 먹어본 1986년을 잊지 못한다. 당시 카투사에서 군복무를 하던 그는 첫 휴가 때 미군 레스토랑에서 피자와 티본스테이크를 먹어봤다. 그는 “식사를 마친 뒤 양식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주방장은 대학을 졸업한 1991년부터 조선호텔에서 일한 것을 시작으로 27년째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올해 조선호텔에서 나인스게이트 리뉴얼 프로젝트를 맡았다.
[호텔의 향기] 1986년 '미각 충격'에 요리사 결심…로스트 치킨, 담백한 저와 닮았죠
이 주방장은 “조선호텔 직영 레스토랑인 뉴욕 그래머시 키친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열 때 셰프로서는 이례적으로 지배인을 겸했다”며 “늘 주방에만 있다가 소비자 의견을 직접 들어보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다 식어버린 음식을 먹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올해 초 나인스게이트 주방장으로 온 뒤 이 점에 착안해 로스트 치킨을 리뉴얼했다. 먼저 사진을 찍을 시간을 준 다음 살을 발라주자고 의견을 냈다. 나인스게이트는 로스트 치킨을 먼저 눈으로 한 번 보여주고, 그다음 가슴살을 발라서 서빙한 뒤 다리살 등은 치킨 리소토로 만들어준다.

이 주방장은 “요리는 대부분 재료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돈가스는 고기를 튀겨냄으로써 돼지고기 등심에 부족한 지방을 보충하고, 기름이 많은 삼겹살은 구워서 기름을 빼주는 식이다. 그런데 로스트 치킨은 이미 지방 함량이 적은 닭고기를 오히려 오랜 시간 오븐에서 익혀 기름을 빼낸다. 이 주방장은 “그래서 진하고 묵직한 맛이 난다”고 했다.
[호텔의 향기] 1986년 '미각 충격'에 요리사 결심…로스트 치킨, 담백한 저와 닮았죠
언젠가 호텔을 은퇴할 때 책을 기증하는 것이 이 주방장의 바람이다. 월급날마다 책을 몇 권씩 산 게 이제는 2000권이 넘는다. 그는 “책은 요리 영감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출처”라며 “평소 요리사들에게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여덟단어》 등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