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22·하이트진로)의 고진감래다. 2년 전 브리티시여자오픈 준우승으로 눈앞에서 놓쳤던 미국행 티켓을 결국 손에 쥐었다.

15일 한국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 하나은행챔피언십(총상금 200만달러)에서다. 한 때 선두를 빼앗겼다 다시 승부를 뒤집는 ‘강철 멘탈’로 재역전 드라마를 썼다.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슈퍼 장타 vs 송곳 아이언 정면대결

고진영은 이날 인천 영종도 스카이72CC 오션코스(파72·6316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보기 2개 버디 6개를 묶어 4언더파 68타를 쳤다. 최종합계 19언더파 269타를 적어낸 그는 막판까지 치열한 우승경쟁을 벌였던 2위 박성현(24·KEB하나은행)과 3위 전인지(23)를 각각 2타,3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우승상금은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

3년째 국내 투어를 뛰며 틈틈이 LPGA의 문을 두드린 고진영은 9번째 도전 끝에 꿈을 이뤘다. LPGA는 우승자에게 당해 시즌 남은 대회와 이듬해 시즌 대회 출전권을 준다.

2015년 국내 투어에 데뷔한 고진영은 그동안 9승을 올린 K골프의 대표주자다. 2015년 브리티시오픈 최종라운드에서 선두를 달리다 박인비(29)에게 역전패를 당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고진영의 우승으로 한국 낭자들은 14승을 합작했다. 15승을 올리며 한 시즌 사상 최다승을 기록한 2015년에 근접한 승수다. 남은 대회는 6개다.

◆역전 재역전…갤러리 환호

장타와 송곳 아이언의 정면승부였다. 고진영은 국내 투어(KLPGA)에서 가장 정확하게 치는

‘컴퓨터 히터’다. 드라이버 정확도 1위(82.19%),아이언 정확도 1위(79.73%).박성현은 LPGA 투어 장타 서열 9위(270.89야드)의 ‘슈퍼 장타자’다. 하지만 드라이버 정확도 130위(66.78%),아이언 정확도 8위(75.98%)에 올라 있어 정확도가 상대적으로 뒤처진다.

승부는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살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하게 전개됐다.시작은 박성현의 독주. 2타 차로 경기를 시작한 고진영이 초반 2홀 연속 보기를 범한 반면 박성현은 2번,4번,5번홀에서 버디를 솎아내며 2타 차 단독 선두로 내달았다.

첫 번째 승부의 갈림길은 7번홀에서 맞닥뜨렸다. 고진영이 이 홀부터 9번홀까지 세 홀 연속 버디를 쓸어담은 반면,박성현은 퍼트와 웨지샷이 흔들리면서 파에 그친 것. 고진영이 순식간에 선두자리를 탈환했다.

살얼음 선두 공방을 주고받던 두 선수의 승부가 고진영쪽으로 기운 곳은 14번홀이었다. 1타 차로 뒤쳐져 있던 박성현이 14번홀(파4)에서 3m 정도의 버디 퍼트를 놓친 뒤 1m도 안되는 파퍼트마저 우측으로 밀어친 탓에 3퍼트 보기를 적어내며 주춤했다.

고진영이 다시 2타 차로 달아났다. 박성현은 이후 짧은 파4(275야드)홀인 15번홀에서 드라이버 티샷으로 1온에 성공한 뒤 버디를 잡아내며 추격의 고삐를 죘다. 하지만 고진영이 다시 버디를 잡아내면서 박성현의 추격을 뿌리쳤다.

고진영은 16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격차를 3타 차로 벌렸고,17번,18번홀을 파로 잘 막아 생애 첫 LPGA 챔피언에 등극했다. 박성현은 마지막 홀에서 2온을 시도해 버디를 잡아냈지만 2타 차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박성현은 세계랭킹 1위 등극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박성현은 우승할 경우 LPGA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 평균타수, 신인상을 휩쓸 발판을 단단히 다질 수 있었다. 신인왕과 올해의 선수 동시수상은 1978년 낸시 로페스(미국) 이후 39년 만의 일일만큼 뜻깊은 기록이다.

◆사상 최다 관중… ‘빅3’ 응원전 후끈

대회장은 이날 대회 사상 처음 챔피언조로 묶인 빅3의 우승 경쟁을 보기 위해 몰려든 갤러리들로 뒤덮였다. 이날 하루에만 3만1726명이 몰렸다. 하루 기준 사상 최다 갤러리다.

주최측은 “나흘간 총 6만1996명의 갤러리가 입장한 것으로 집계됐다”며 “2003년 대회 창설 이후 사상 최대 관중이 집결했다”고 밝혔다.

특히 박성현과 고진영이 공동 선두로 살얼음판 승부를 벌이기 시작한 후반부터는 챔피언조가 티오프를 하는 티잉그라운드부터 그린까지 긴 인간띠가 형성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팬층이 가장 두터운 ‘K골프 빅3’가 쫓고 쫓기는 우승경쟁을 벌인데다 날씨까지 화창했던 덕분이다.

필리페 핀턴 월드프레스에이전시 기자는 “아시아권에서 열린 많은 LPGA 대회를 취재해봤지만 (갤러리가) 이렇게 많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팬클럽이 응원전을 펼치는 것도 다른 투어에선 보기 힘든 흥미로운 광경”이라고 말했다.

영종도=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