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난해 집행된 정부 예산에 대한 결산 심사를 법정시한을 한 달 반 넘기도록 끝내지 못하고 있다. 2004년 개정된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결산안 심사를 정기국회 시작(9월1일) 전에 마쳐야 한다. 여야는 지난 8월31일 결산안을 처리키로 했지만 불발했다. 야당이 공무원 증원에 필요한 연금 재정추계 자료를 요구한 데 대해 여당이 반대하면서다.

결산안이 언제 처리될지 기약도 없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추가 심사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국정감사가 겹치면서 결산안은 의원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렸다. 결산안 심사는 정부의 전년도 예산 씀씀이를 들여다본 뒤 문제가 있으면 각 부처에 시정을 요구하고, 다음 연도 예산에 반영하도록 하는 절차다.

일반 가정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가계부를 적고, 돈을 어떻게 썼는지 따져본다. 나라예산은 더 그래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2011년만 빼고 결산안 처리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정치공방에 밀려 ‘졸속 심사’를 되풀이해왔다. 결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도 여파가 미치게 된다. 야당은 결산안을 처리한 뒤 예산안 심사를 한다는 방침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감을 예년보다 늦게 마치게 되면서 예산 심사는 촉박하게 진행해야 한다. 10월 중순께 국감을 끝내고 예산 심사에 들어가는 게 보통이지만, 올해는 국감이 이달 31일까지 열린다. 법정시한(12월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해선 11월에 심사일정을 마쳐야 한다. 정부 종합보고만 해도 며칠 걸리는 데다, 16개 상임위별 심사 후 예결위 전체회의 및 소위 심사, 정부와 최종 조율 등을 거치려면 한 달만으로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더욱이 내년 예산 규모는 9년 만에 최고로 증가(7.1%)한 429조원으로, ‘슈퍼예산’이란 소리가 나온다. 규모는 큰데 심사 기간은 짧고, 대폭 늘어난 복지 예산 등 쟁점거리는 많다. 막판 ‘몰아치기’ 관행이 재연되면서 졸속·날림심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정부가 나라살림을 허투루 하지 않았는지, 예산안에 낭비요인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는 것은 국회 본연의 업무다. 여야가 이걸 망각한 채 “적폐” “신적폐”를 외쳐본들 국민의 공감을 얻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