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상장폐지 실질심사 제도를 놓고 딜레마에 직면했다. 애초 코스닥 부실기업을 솎아내기 위한 본래 목적과 달리 한국항공우주와 같은 대형주가 잇달아 실질심사 대상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항공우주는 시가총액 4조원이 넘는 코스피200 종목이다.

한국항공우주는 17일 닷새째 거래 정지 중이다. 지난주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하면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가리기 위해 지난 11일 거래를 정지시켰다.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을 대표로 임명하면서 10일 주가가 9.15% 급등한 직후였다. 퇴출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국내 투자자는 물론 외국인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외국인은 한국항공우주 지분 20.8%를 보유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체할 방산기업이 없는 데다 최근 실적이 좋아 퇴출될 가능성은 작지만 상장폐지 가능성을 묻는 투자자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상장폐지 실질심사제도는 부실기업을 퇴출하고 시장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9년 도입됐다.

코스닥시장에선 2011년 이후 올해까지 7년 동안 분식회계 및 횡령·배임으로 심사 사유가 발생한 종목 105개 중 34개가 퇴출됐다. 실제 상장폐지 사례는 2011년 13건에서 올해 2건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 7년 동안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한 종목은 38개에 불과하다. 이 중 4개 기업이 배임·횡령으로 상장폐지됐다.

본래 취지와 달리 대형주가 실질심사 대상으로 자주 오르고 있다. 대형주는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현실적으로 퇴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신 주식 거래가 묶인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5조원대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으로 1년3개월 넘게 거래가 정지돼 있다. 동아쏘시오홀딩스도 지난 7월 700억원대 횡령 사실이 확인돼 거래가 정지됐다가 실질심사 사유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보름여 만에 풀리기도 했다.

시장에선 실질심사 제도를 손봐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부실기업을 퇴출하기 위한 목적과 달리 시장 불안감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며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차별화해서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