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아파트 분양방식 시장에 맡겨라
정부와 국회가 최근 아파트 후분양제 도입을 밝히면서 주택분양시장에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아파트를 분양할 때 80% 정도까지 공사를 완료하고 입주자 모집을 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당장 의무화할 경우 주택업계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 때문에 공공주택부터 우선 적용하고 민간주택에는 점진적 도입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수요자들은 견본주택만 보고 구매하는 선분양보다, 완제품을 살펴보고 구입하는 후분양이 당연히 유리하다. 하지만 공급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판매 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수요자 보호 장치와 주택품질 보장대책 등만 갖춰주고, 분양 방식은 시장에 맡기는 게 합리적이다.

공급여건에 따라 선택

국내 신규 주택 판매는 선분양이 대세로 굳어져 있다. 하지만 주택 공급이 안정된 선진국에서는 후분양이 관행이다. 선분양과 후분양을 혼용하는 경우도 많다. 주택 상품과 입지가 우월하면 선분양 단계에서 ‘완판’되기도 한다. 주택경기가 호조일 때도 선분양이 잘 통한다.

반면 신규 공급이 부족한 주택시장에서는 후분양 선택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새 아파트의 합리적 분배(분양)를 위해 별도의 청약제도까지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제도의 핵심은 무주택 기간이 오래된 순서대로 우선 구매 기회를 주는 것이다.

후분양제는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당시 정부는 2007년부터 공공주택에 먼저 도입하고, 민간주택에는 순차적으로 적용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주택업계 반발에 부딪혀 도입을 1년 연기했다. 이듬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기됐다 9년 만에 다시 부활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후분양제가 청약과열 해소, 분양권 투기방지, 하자분쟁 감소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택업계는 반대 의견이다. 준공 때까지의 건설자금 마련이 힘든 데다, 고비용 구조여서 사업 시행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중견 주택업체들은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져서 신규 주택 공급이 급감할 것으로 우려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분양가가 상승해서 집값 안정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다. 수요자들도 집값을 분납하는 선분양보다 목돈을 내야 하는 후분양이 불편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업계·수요자, 후분양제 대비해야

정부와 민간의 주장에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각자 입장만을 무리하게 내세우고 있다. 개발자금 조달 문제는 정부와 금융계가 풀어갈 수 있는 과제다. 집값 목돈 부담도 대출시스템으로 해소가 가능하다. 후분양이 집값 안정, 청약과열 해소, 전매투기 근절 등에 효과가 있을 것이란 정부 판단도 근거가 부족하다. 더욱이 이를 토대로 정부가 후분양을 강제하는 것은 난센스다.

국내 주택시장은 선진국형 공급과잉 구조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어느 시점이면 국내 주택시장에서도 자연스럽게 후분양이 도입될 수밖에 없다. 주택업계도 막무가내로 후분양을 막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고객 맞춤형 마케팅 개발 등을 통해 시장 변화에 선제적 대비를 하는 게 현명하다. 선진국 업체들의 경우 수요자들이 선분양으로 집을 사면, 준공될 때까지 기간의 이자를 돌려주는 등 서비스 차별화에 많은 공을 들인다.

정부도 시장 변화에 맞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과도한 집값 잡기와 공급 방식 규제 등 현 정부 정책이 지나치게 ‘주택공급부족시장 프레임’에 맞춰진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 주택산업 선진화를 가로막는 중대한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박영신 한경부동산연구소장 겸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