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ADVERTISEMENT

    전순옥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서울패션위크'를 찾은 까닭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018 S/S 서울패션위크 오프쇼 찾은 전순옥 위원장
    "동대문, 세계의 패션 기지 될 것…신진 디자이너 격려 위해 참석"
    '하이서울패션위크-오프쇼' 블랭크 런웨이를 찾은 전순옥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 /사진=SBA 제공
    '하이서울패션위크-오프쇼' 블랭크 런웨이를 찾은 전순옥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 /사진=SBA 제공
    전순옥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힘을 싣기 위해 나섰다.

    지난 18일 서울 동대문구 DDP 이간수문 전시장에서 열린 '2018 S/S 하이서울패션위크 - 오프 쇼(OFF SHOW)'에 전순옥 위원장이 참석해 디자이너들에게 격려를 보냈다.

    전 위원장은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으로 1970년 11월 오빠의 죽음 후 봉제공장에서 미싱사 보조로 일한바 있는 우리나라 봉제 산업의 산증인 중 하나다. 이후 그는 1989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워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국 후에는 봉제노동자들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힘을 쏟은 바 있다.

    이처럼 한국의 패션 산업을 속속 들여다보고 있는 탓에 유독 디자이너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특히 그는 브랜드 '캄퍼씨'의 송승렬 디자이너와 인연으로 '오프쇼'의 블랭크 패션쇼장을 찾아 오랜 시간 런웨이를 지켰다.

    이날 전 위원장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업계를 리드해야 우리나라 패션, 섬유, 봉제 산업이 다 살 수 있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그는 "세 분야 중 한 분야만 잘 되어도 안된다. 소재, 바느질, 디자인이 잘 어우러져야만 좋은 기술이 되고 세계적인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순옥 위원장은 2012년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하기 전 창신동 공장지역으로 들어가 10여년을 여성 봉제 노동자들과 보냈다. 2008년에는 사회적기업 '참 신나는 옷'을 설립했다.

    그는 "사실 패셔너블한 사람은 아니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어 "우리나라 패션계가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때가 왔다고 본다. 디자이너들이 만드는 옷, 동대문에서 팔리고 있는 모든 옷들을 즐겨 입는 사람으로 함께 뛰고 싶었다"라고 패션쇼를 찾은 이유를 전했다.

    전 위원장은 2015년 소상공인 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특히 도시형 소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오고 있다.

    그는 "소공인은 만드는 사람, 소상인은 파는 사람이다. 여기있는 디자이너들도 모두 소상공인"이라면서 "기술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만들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환경을 서포트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하이서울패션위크-오프쇼' 블랭크 런웨이를 찾은 전순옥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 /사진=SBA 제공
    '하이서울패션위크-오프쇼' 블랭크 런웨이를 찾은 전순옥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 /사진=SBA 제공
    전순옥 위원장은 일각에서 패션 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시선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는 "패션산업에는 선진국, 중진국, 후발주자가 있다. 후발주자는 노동시장은 크지만 기술, 디자인을 갖지 못하고 선진국은 디자인과 브랜드 네임은 갖고 있지만 생산 가능한 노동시장은 없다. 아웃소싱에 기대는 편"이라며 "우리나라는 중진국에서 선진국 문턱으로 발돋움 하려하고 있다"라고 한국 패션계의 현재를 분석했다.

    이어 "우리는 선진국과 후발주자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기술자들이 고령화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노동시장이 있고, 기술, 디자인, 소재 면에선 선진국을 뛰어 넘는 수준"이라며 "대한민국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낙관했다.

    전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은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스템으로 흘러간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일본과 같은 패션 선진국들은 이같은 시스템을 잃어버리는 실정이다. 그는 "아웃소싱하는 세계의 브랜드들이 우리나라에서 소량 생산해 나갈 수 있도록 세계의 패션 기지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순옥 위원장이 방문한 서울패션위크 오프쇼는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SBA)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는 디자이너 쇼룸 ‘하이서울쇼룸(HI SEOUL SHOROOOM)’의 주관으로 기획 된 ‘하이서울 패션쇼(HI SEOUL FASHION SHOW)의 일환이다.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은 ‘하이서울쇼룸’에 입점한 디자이너를 알리기 위해 서울패션위크 기간과 맞물려 하이서울 패션쇼를 기획했다.

    하이서울 패션쇼는 19일까지 진행되며 블랭크를 포함해 ‘크레스에딤(CRES. E DIM).’, ‘랭앤루(LANG&LU)’, ‘만지(MAN.G)’ 등 ‘하이서울쇼룸’에 입점한 16개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참여할 예정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서울시립미술관, 2030년엔 덕수궁 정동길서 ‘바로 입장’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의 8개 본·분관 체계가 확립된다. 지난해 개관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 이어 오는 3월 서울 금천구에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이 문을 열게 되면서다. 27일 서울시립미술관은 신년간담회를 열고 2026년 중장기 운영 방향과 전시 계획을 밝혔다.인사말에 나선 서울시립미술관 최은주 관장은 “올해는 서서울미술관이 8개 본·분관 체계가 완성되는 중요한 해”라며 “각 미술관 고유의 특성을 바탕으로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발휘해 공공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고, 도시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서울의 대표적 동시대 미술관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전했다.서울시립미술관의 본·분관 체계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시립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으로 구성된다.오는 3월 12일 개관 예정인 서서울미술관은 서남권 첫 공립미술관이다. 서울시 최초의 공공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이기도 하다. 영상이나 음향, 조명 작품부터 퍼포먼스, 개념미술과 코딩아트를 아우르는 뉴미디어 분야의 관련 전시와 연구프로그램을 운영할 전망이다.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은 2030년 9월 준공을 목표로 리모델링 사업을 본격화한다. 서소문 본관은 일제강점기 경성재판소로 건립됐다. 조선 시대 최초의 법원이었던 평리원(平理院)을 기반으로 세워진 이곳은 해방 이후 대법원 건물로 쓰였고, 1920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동하면서 리모델링해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서울시립미

    2. 2

      리히터, 쿠닝, 로스코와 함께 했던...'전설의 갤러리스트' 퇴장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 미술계를 종횡무진 누비던 거물 갤러리스트와 아트 딜러들이 최근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아트뉴스 등 미술전문매체들은 지난 22일 뉴욕 마리안 굿맨 갤러리의 설립자 마리안 굿맨의 별세를 대서특필했다. 굿맨은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젤름 키퍼, 주세페 페노네 등 유럽의 현대미술 거장들을 오랫동안 전속 작가로 두며 이들을 뉴욕 예술계에 소개했다. 아트뉴스는 “굿맨은 상업적 유행에 휘둘리지 않았고, 20세기 유럽의 전위 예술과 개념 미술을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시작은 2024년 6월 한국에도 지점을 둔 글로벌 갤러리 글래드스톤의 창업자 바바라 글래드스톤(1935~2024)의 별세였다. 지난해 6월에는 파리와 뉴욕의 갤러리 르롱을 거점으로 호안 미로, 프랜시스 베이컨 등 거장들의 유산을 관리해 온 갤러리 르롱의 설립자 다니엘 르롱(1933~2025)이 91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5월에는 오스트리아의 거물 갤러리스트 존 세일러(1937~2025), 8월에는 영국 사치갤러리의 공동 설립자이자 찰스 사치의 전부인인 도리스 록하트 사치(1937~2025)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부흥기를 이끌며 영국 현대 미술의 저변을 넓힌 실질적인 기획자로 평가받는다.지난해 12월에는 골드만삭스 파트너 출신으로 윌리엄 드 쿠닝, 마크 로스코 등 전후 미국 추상 표현주의 작품을 거래했던 영향력 있는 딜러 로버트 므누신(1933~2025)이 숨을 거뒀다. 스티브 므누신 전 미국 재무장관이 그의 아들이다. 같은 달 갤러리스트이자 큐레이터, 뉴욕시립예술학교 교수로서

    3. 3

      도쿄로 향한 구본웅...새로운 사조의 '신미술'을 주도하다

      도쿄로 향하는 길구본웅이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을 타던 당시의 조선에는 정규 학교 교육과정을 통한 미술가를 양성하는 전문 미술학교가 없었다. 1894년 갑오개혁을 시작으로 나라의 운명과 함께 도화서가 폐지되면서 조선 회화의 명맥을 유지하던 숨골마저 흩어졌다. 특히 ‘닭똥칠’하는 서양화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교습소가 전부였다. 그런 유수기에 고희동을 비롯한 1세대 일본 유학생들이 귀국하면서 ‘미술’이 예술화되는 길에 단체가 조직되고 부설 학습소가 개설되기 시작한 것이다.<고려미술원>, <서화협회>, 등 구본웅을 비롯한 김용준, 길진섭, 김주경, 이마동 등이 공부했던 단체들이다. 그리고 그들만을 위한 《서화협회전》, 《조선미술전람회》 등 전시회가 독립된 공간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선 땅에서는 거기까지고, 잔치는 일본인을 위한 것이지 조선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공부를 하려면 배를 타야 했다.도쿄의 서양화단-새로운 흐름1930년을 전후해서 당시 일본화단에서는 일본화나 서양화 모두 신일본주의(新日本主義)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본만의 고유한 회화를 추구하는 시도이다. 일본 서양화단은 구로다 세이키(黒田清輝, 1866-1924)가 동경미술학교에 서양화과를 개설하면서부터 화단의 맹주로 군림했던 아카데미즘 즉, 인상파 바탕의 절충화풍인 외광파가 점차 퇴조하고 있었다.같이 고전적인 아카데미 화풍을 추구했지만 구로다 세이키의 백마회(白馬會)와 반대편에 섰던 태평양화회(太平洋畵會)의 카노코기 다케시로(鹿子木孟郞)가 파리에서 돌아와 '우리들 양화가는 일본의 자연을 배반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비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