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경제 선순환'에서 이탈하는 순간 패권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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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의 비밀
김태유·김대륜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420쪽 / 2만3000원
김태유 서울대 교수의 패권론
농업·상업·산업 성장이론으로
세계 강대국 흥망성쇠 분석
네덜란드, 17세기 '상업혁명'
세계 최대 해양강국으로 발전
영국·미국은 19세기 기술혁신 통해
성장 가속하는 산업사회 주도
김태유·김대륜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420쪽 / 2만3000원
김태유 서울대 교수의 패권론
농업·상업·산업 성장이론으로
세계 강대국 흥망성쇠 분석
네덜란드, 17세기 '상업혁명'
세계 최대 해양강국으로 발전
영국·미국은 19세기 기술혁신 통해
성장 가속하는 산업사회 주도
강대국의 흥망은 역사학뿐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에서 늘 관심의 중심에 있었다. 많은 학자들이 각 분야에서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인류 역사에 기록된 제국들이 어떻게 패권을 쥐었고 놓쳤는지 연구하며 강대국의 조건을 탐구해왔다.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을 주로 연구해온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66)도 그중 한 명이다. 한반도의 5분의 1 크기밖에 안 되는 소국 네덜란드가 17세기 해양 강국으로 세계에 위세를 떨치고, 서유럽 변방에 있는 한반도만 한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한 비결은 뭘까. ‘강대국의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줄 방법은 없을까’란 의문에서 출발해 ‘선진 강대국’이란 화두에 천착해왔다는 김 교수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역사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 비밀을 파헤치는 데 몰입하게 됐다”고 했다.
김 교수가 역사학자 김대륜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기초학부 교수(44)와 함께 쓴 《패권의 비밀》은 그 결과물이다. 김태유 교수가 2013년 펴낸 《경제성장론》(스프링거)을 통해 정립한 자신의 성장 이론을 분석 틀로 삼아 16세기 스페인제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영국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까지 세계 패권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다.
저자는 인류사에 등장하는 경제성장의 유형을 두 가지로 대별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성장이 감속하는 농업사회(단순 재생산 체제)와 가속하는 상업사회(확대 재투자 체제)·산업사회(확대 재생산 체제)다. 저자는 한 나라의 패권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조건과 경제체제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본다. 수많은 패권국 중에서 스페인부터 미국까지 서양 강대국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은 이들 제국이 단순 재생산 체제에서 확대 재투자 체제, 확대 재생산 체제로 나아가는 인류 문명 발전과 진화의 중심선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 사회가 패권을 행사하고 보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 사회의 경제체제가 경제적 잉여를 충분히 생산해내고 적절히 분배하는 능력, 즉 경제의 선순환에 달려 있다. 패권국의 경제체제가 본질적 한계에 직면하면 사회적 국제적 갈등이 고조되고 대개 전쟁으로 이어진다. 전쟁은 경제의 선순환 궤도에 복귀하는 경제적 수단이 된다. 패권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경제와 전쟁의 선순환이다. 선순환이 얼마나 잘 이뤄지느냐에 제국의 흥망이 달려 있다.
16세기 가장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스페인은 농업 사회의 단순 재생산 체제에 내재된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영토 정복과 경제적 잉여 수취에 매달렸다. 이는 그러나 스페인 경제의 쇠퇴를 촉진하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국제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네덜란드는 스페인제국과의 80년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17세기를 주도했다. ‘상업혁명’을 통해 가장 선진적인 상업 체제를 구축했다. 이윤을 새로운 상업 활동에 끊임없이 투자하는 확대 재투자 체제를 완성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경제도 근본적으로 수확이 체감하는 농업과 사치품 교역에 의존해 한계에 봉착했다. 농업·상업 사회의 경제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성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확대 재생산 체제다. 확대 재투자 체제에 공급 부문의 혁신을 결합한 영국의 1차 산업혁명, 과학기술과 생산의 결합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과 독일의 2차 산업혁명은 확대 재생산 체제의 탄생과 성숙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영국은 네덜란드의 상업혁명에 기술혁신을 더해 제국을 일궈냈다. 하지만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간다. 확대 재생산 체제의 선순환은 기술혁신에 바탕을 둔 공급의 확대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일어나는 가속적인 성장에 달려 있다.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영국 자본가들은 생산현장보다는 기존 부에서 흘러나오는 금융소득에 안주하면서 모험정신을 잃어버렸다. 기업가정신과 과학기술·모험정신은 신대륙으로 건너간 미국 청교도들이 승계했다. 미국은 여기에 광대한 영토, 풍부한 천연자원, 식민지 이래 상업적 전통을 더해 세계 경제의 패권국이 됐다.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확대 재생산 체제의 선순환이 더욱 원활하게 작동됐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21세기 세계 패권 전망의 주요 의제인 ‘미국 쇠퇴론’을 논한다.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약화와 탈제조업화 현상을 들어 미국 경제가 중요한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금융자본이 산업 투자가 아니라 부가가치를 이전하는 부동산 부문이나 투기적인 용도에 집중되는 경향을 지적한다. 그는 “이 같은 경향이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미국의 확대 재생산 체제가 선순환에서 이탈하는 사태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과거 영국이나 네덜란드 사례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을 주로 연구해온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66)도 그중 한 명이다. 한반도의 5분의 1 크기밖에 안 되는 소국 네덜란드가 17세기 해양 강국으로 세계에 위세를 떨치고, 서유럽 변방에 있는 한반도만 한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한 비결은 뭘까. ‘강대국의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줄 방법은 없을까’란 의문에서 출발해 ‘선진 강대국’이란 화두에 천착해왔다는 김 교수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역사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 비밀을 파헤치는 데 몰입하게 됐다”고 했다.
김 교수가 역사학자 김대륜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기초학부 교수(44)와 함께 쓴 《패권의 비밀》은 그 결과물이다. 김태유 교수가 2013년 펴낸 《경제성장론》(스프링거)을 통해 정립한 자신의 성장 이론을 분석 틀로 삼아 16세기 스페인제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영국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까지 세계 패권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다.
저자는 인류사에 등장하는 경제성장의 유형을 두 가지로 대별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성장이 감속하는 농업사회(단순 재생산 체제)와 가속하는 상업사회(확대 재투자 체제)·산업사회(확대 재생산 체제)다. 저자는 한 나라의 패권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조건과 경제체제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본다. 수많은 패권국 중에서 스페인부터 미국까지 서양 강대국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은 이들 제국이 단순 재생산 체제에서 확대 재투자 체제, 확대 재생산 체제로 나아가는 인류 문명 발전과 진화의 중심선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 사회가 패권을 행사하고 보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 사회의 경제체제가 경제적 잉여를 충분히 생산해내고 적절히 분배하는 능력, 즉 경제의 선순환에 달려 있다. 패권국의 경제체제가 본질적 한계에 직면하면 사회적 국제적 갈등이 고조되고 대개 전쟁으로 이어진다. 전쟁은 경제의 선순환 궤도에 복귀하는 경제적 수단이 된다. 패권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경제와 전쟁의 선순환이다. 선순환이 얼마나 잘 이뤄지느냐에 제국의 흥망이 달려 있다.
16세기 가장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스페인은 농업 사회의 단순 재생산 체제에 내재된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영토 정복과 경제적 잉여 수취에 매달렸다. 이는 그러나 스페인 경제의 쇠퇴를 촉진하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국제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네덜란드는 스페인제국과의 80년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17세기를 주도했다. ‘상업혁명’을 통해 가장 선진적인 상업 체제를 구축했다. 이윤을 새로운 상업 활동에 끊임없이 투자하는 확대 재투자 체제를 완성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경제도 근본적으로 수확이 체감하는 농업과 사치품 교역에 의존해 한계에 봉착했다. 농업·상업 사회의 경제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성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확대 재생산 체제다. 확대 재투자 체제에 공급 부문의 혁신을 결합한 영국의 1차 산업혁명, 과학기술과 생산의 결합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과 독일의 2차 산업혁명은 확대 재생산 체제의 탄생과 성숙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영국은 네덜란드의 상업혁명에 기술혁신을 더해 제국을 일궈냈다. 하지만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간다. 확대 재생산 체제의 선순환은 기술혁신에 바탕을 둔 공급의 확대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일어나는 가속적인 성장에 달려 있다.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영국 자본가들은 생산현장보다는 기존 부에서 흘러나오는 금융소득에 안주하면서 모험정신을 잃어버렸다. 기업가정신과 과학기술·모험정신은 신대륙으로 건너간 미국 청교도들이 승계했다. 미국은 여기에 광대한 영토, 풍부한 천연자원, 식민지 이래 상업적 전통을 더해 세계 경제의 패권국이 됐다.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확대 재생산 체제의 선순환이 더욱 원활하게 작동됐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21세기 세계 패권 전망의 주요 의제인 ‘미국 쇠퇴론’을 논한다.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약화와 탈제조업화 현상을 들어 미국 경제가 중요한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금융자본이 산업 투자가 아니라 부가가치를 이전하는 부동산 부문이나 투기적인 용도에 집중되는 경향을 지적한다. 그는 “이 같은 경향이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미국의 확대 재생산 체제가 선순환에서 이탈하는 사태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과거 영국이나 네덜란드 사례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