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향기] 프랑스 상류사회도 인정…상대방 마음 여는 '마법의 향수'
은은한 꽃향기와 물을 머금은 나무 냄새, 어딘가에서 배어나오는 계피와 정향의 고급스러운 향기. 프랑스 향수 브랜드 ‘딥티크’ 하면 떠오르는 향이다. 내년 출시 50년이 되는 딥티크의 ‘로(L’Eau)’는 세련된 향으로 국내 니치향수(고급 원료를 사용해 독특한 향을 내는 고가 향수) 트렌드를 주도한 대표 제품이다. 향수에서 남녀 성별 구분을 없앤 것도, 중성적인 향기의 아름다움을 알린 것도 딥티크라고 전문가들은 평한다.

◆예술작품 같은 향수

딥티크는 1961년 3명이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34번가에 작은 가게를 열면서 시작됐다. 영국 출신의 화가 데스먼드 녹스 리트, 무대 디자이너 이브 쿠에랑, 건축가인 크리스티앙 고트로가 딥티크 공동 창립자다. 처음엔 직접 만든 아름다운 패턴의 패브릭을 제작해 팔았다. 고트로는 “우리는 돈을 좇기보단 열정과 상상력을 좇았고 진정한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어 의기투합했다”고 회고했다.
[명품의 향기] 프랑스 상류사회도 인정…상대방 마음 여는 '마법의 향수'
프랑스어로 ‘2단 접이 화판’을 뜻하는 딥티크는 접힌 화판을 열었을 때 하나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두 개의 그림이 나타나는 예술작품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생제르맹 매장의 창문을 2단접이 화판처럼 만든 것도 자신들이 디자인한 삽화, 그림처럼 만들어낸 글자 디자인, 인테리어 등을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뜻밖에 창문 장식용 전등이 인기를 끌었다. 세계 각지에서 그들이 수집한 인테리어 소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 특히 영국에서 수입한 향초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직접 향초 제작에 나섰고 1963년 ‘오베?느’ ‘까넬르’ ‘더’ 등 3종의 향초가 나왔다. 향초가 불티나게 팔리면서 1968년 첫 향수 ‘로’를 내놓았다. 딥티크를 니치향수 브랜드로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명품의 향기] 프랑스 상류사회도 인정…상대방 마음 여는 '마법의 향수'
당시 프랑스 상류사회를 열광시킨 건 남다른 향기였다. 리트는 예민한 후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향수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조향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화가답게 그림을 그리듯 고체 원료를 부수고 쪼개 향기를 조합했다. 송진과 파우더에 으깬 꽃잎을 섞어 향기 나는 페이스트를 만들었고 향수 전문가에게 이를 맡겨 농축액 형태로 제작했다. 이를 근간으로 다양한 향수를 선보일 수 있었다.

◆독창적 향으로 선물용 ‘인기’

호기심이 많고 여행을 즐기며 문화와 자연을 사랑한 세 명의 공동 창업자는 제품 한 개를 팔더라도 예술작품 같은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다. 딥티크를 상징하는 그래픽과 삽화, 글씨가 담긴 타원형 라벨이 탄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캘리그라피를 즐겨 했던 데스먼드는 향초를 만들면서 자신이 그린 삽화와 글자로 라벨을 제작했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인디아 잉크로 제작한 이 라벨은 향수병마다 다른 스토리와 이름, 향기 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딥티크는 남녀 구분 없이 향수를 판매하는 브랜드다. 향수 제품명에 ‘o’ 발음이 나거나 ‘eau’ 라는 글자를 많이 넣는 것도 중성적 이미지의 ‘물’처럼 남녀 구분 없이 쓸 수 있는 향기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남녀 구분이 명확하고 상류사회가 존재했던 1960년대에 이는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문화적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향수에 접근했다.
[명품의 향기] 프랑스 상류사회도 인정…상대방 마음 여는 '마법의 향수'
포푸리 향기와 계피, 나무, 꽃, 정향 등 다양한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로’뿐만 아니라 딥티크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많다. 공동 창립자인 쿠에랑이 만든 ‘도손’은 어린 시절 하롱베이 도손 바닷가에서 보낸 시절을 떠올리며 내놓은 향수다. 은은한 향신료 향과 해풍에 섞인 꽃향기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원료는 튜베로즈, 오렌지 블라섬, 재스민 등이다. 튜베로즈는 멕시코 구근식물로 1년에 딱 한 번 꽃을 피운다. 자극적인 이 꽃향기를 다른 향과 조화시켜 바닷바람 속에서 넘실거리는 꽃향기를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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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에랑의 또 다른 작품 ‘탐다오’는 동남아시아의 숲과 산에서 착안한 향수다. 습한 공기를 머금은 저녁 바람, 그 속에 배어든 샌들우드, 신선한 사이프러스 향 등을 떠올리며 제작했다. 원재료는 마이조르 샌들우드, 백향목, 사이프러스 등이다. 지중해 연안의 식물인 머틀을 더해 송진향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무슨 향인지 다시 한 번 맡아보고 싶게 만드는 ‘오데썽’도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코로 처음 향기를 맡을 땐 자극적이어서 음식을 먹은 듯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신선한 과일과 폭포수도 연상된다. 오데썽은 광귤나무의 뿌리부터 나뭇가지, 나뭇잎, 열매 등 모든 원료를 활용해서 조합한 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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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티크는 현재 파리 런던 뉴욕 등 9시 도시에 17개 부티크 매장을 운영 중이다. 국내를 포함해 40개 국가에 진출해 700여 개 매장을 갖고 있다. 향수와 향초가 대표적이지만 디퓨저, 룸스프레이와 스킨케어, 보디케어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독창적인 딥티크만의 향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디퓨저 향초 향수 등은 선물용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선 신세계백화점 본점, 강남점 등 25개 전국 백화점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