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PGA 투어 CJ컵 초대 챔피언은 1000만달러의 사나이 저스틴 토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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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바람은 생애 처음이다!”(제이슨 데이)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퍼팅 브레이크까지 바꿔놨다”(저스틴 토머스)
제주 바람은 파도같다. 결을 지니지 않고 뭉쳤다가 일쑤 흩어진다. 바람의 통로가 있는 긴 편백나무 숲 사이 어디든 헤집고 다녀 방향을 알 수 없다. 김시우(22·CJ대한통운)는 “낮은 바람이 빗자루처럼 그린을 쓸고다녀 퍼트와 어프로치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깃대 잠잠해도 상공엔 돌풍
22일 제주 서귀포시의 클럽나인브릿지(파72·7196야드)에서 막을 내린 국내 최초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정규대회 CJ컵 나인브릿지 대회(총상금 925만달러)도 그랬다. 선수들의 샷은 터무니없이 길거나 짧았다. 100야드 안팎에서 1~2m 반경에 공을 쉽게 떨구는 세계 최고의 샷 고수들이 제주의 미스테리 바람에 쩔쩔맸다.
17번 홀(파3·195야드)이 대표적이다. 김민휘(25)의 아이언샷은 완벽했다. 하지만 공은 그린 20m 앞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김민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하지만 그만의 실수가 아니었다. 마크 리시먼(호주), 스콧 브라운(미국),토머스(미국)도 똑같이 짧았다. 모두 보기를 적어냈다. 셋 모두 아이언샷 그린 적중률 80%안팎을 자랑하는 아이언 달인들이다. 김민휘는 “그린 위 상공에 바람이 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선수들은 1m도 채 안되는 짧은 퍼트에서도 그린의 고유 굴곡인 한라산 브레이크와 바람의 결을 함께 읽어내느라 보통 15분 정도인 한 홀을 끝내는데 20분을 이상을 써야 했다.
◆초특급 장타자 토머스,최후의 승자로
가혹한 자연을 뚫어낸 주인공은 ‘1000만달러의 사나이’ 저스틴 토머스(미국)였다.
그는 이날 버디 4개,보기 2개,더블 보기 1개를 묶어 이븐파 72타를 쳤다.최종합계 9언더파 279타를 친 토머스는 이날 2타를 줄여내 동타를 적어낸 호주의 마크 리시먼을 2홀까지 가는 연장혈투 끝에 꺾었다. 시즌 첫 승이자 통산 7승째다. 우승상금 166만5000달러(약 19억원)도 그의 몫이 됐다.
18번 홀에서 열린 연장 첫 홀은 무승부로 끝났다. 티샷이 오른쪽으로 크게 밀리면서 위기를 맞은 리시먼은 빽빽한 나무 숲 사이로 공을 빼내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한 뒤 세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려 파를 잡아냈다. 토머스의 세 번째 샷은 그린과 벙커 경계선 둔덕에 맞고 벙커에 떨어졌지만 정교한 벙커샷을 활용해 2퍼트 파세이브를 했다.
‘우드 대결’로 펼쳐진 연장 두 번째 홀은 싱겁게 끝이 났다. 2온을 노린 리시먼의 우드 샷이 오른쪽으로 크게 밀리면서 해저드에 빠진 것이다. 승부사 토머스의 ‘닥공(닥치고 공격)’이 이 때 빛을 발했다. 5번 우드를 빼든 그는 그린 앞 5m지점의 프린지로 정확히 공을 떨궈 2퍼트 버디로 승부를 확정지었다. 네 번째 샷만에 그린에 공을 올린 리시먼은 더블 보기로 다잡았던 통산 4승째를 눈앞에서 날렸다. 2015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잭 존슨(미국)에게 연장 패배 경험이 있던 리시먼의 두번 째 연장패다.
◆K골프 자존심 살린 92년생 동갑내기
K골프의 초대챔피언 등극은 실패로 끝났다. 1992년생 ‘동갑내기’ 김민휘(25)와 안병훈(25·CJ대한통운)은 막판까지 뒤집기 한판을 노리며 분전했다. 선두와 타수 차가 컸다. 각각 단독 4위, 공동 11위로 고국 팬들 앞에서 맞이한 국내 첫 PGA 대회를 아쉽게 마감했다.
김민휘는 이날 버디 6개를 잡아냈다. 첫날부터 이어진 빼어난 샷감과 퍼트감이다. 하지만 전날보다 한 층 거세진 바람에 발목이 잡히며 더블 보기 1개,보 기 4개를 내줘 이븐파 72타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나흘내내 타수를 잃지 않은 꾸준한 경기력이다.
전날 3라운드를 6언더파 공동 5위로 끝내 역전 우승 기대감을 높였던 김민휘의 전반은 좋았다. 첫 홀을 칩샷 버디로 장식한 그는 2번 홀에서 보기 하나를 내줬지만 다시 3번 홀에서 버디를 뽑아내 언더파를 이어갔다. 이후 타수를 지키기 위한 분투가 시작됐다. 6번, 7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내주며 집중력을 잃는 듯하던 그는 8번, 9번 홀에서 잇달아 버디를 골라내며 1언더파로 전반을 마쳤다. 위기가 닥친 홀은 후반 첫 홀인 10번 홀. 티샷이 밀리면서 더블 보기를 범했다. 하지만 더이상의 흔들림은 없었다. 17번 홀(파3) 에서 티샷을 벙커에 빠트린 탓에 보기 한 개를 내준 것을 제외하고는 14번, 18번홀에서 두 개의 버디를 잡아내 ‘지키는 골프’를 완성했다. 2014년 PGA에 데뷔한 김민휘가 지금까지 기록한 가장 좋은 성적은 준우승이다.
전날까지 5언더파 공동 8위를 달렸던 안병훈은 이날 트리플 보기로 3타를 까먹으며 실망스럽게 출발했다. 아이언 티샷이 밀리면서 오른쪽 오비 구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18홀 중 2개밖에 되지 않는 오비구역으로 하필 공이 들어가고 말았다. 마음을 비운 홀가분함 덕분일까. 이후 집중력이 빛나기 시작했다.
2번, 3번, 4번홀을 파로 지켜내며 기회를 엿본 그는 5번 홀부터 7번홀까지 세 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첫 홀의 악몽을 떨쳐냈다. 원점으로 상황을 돌린 그는 8번, 9번홀에서 파 행진을 벌인 뒤 10번,11번홀에서 두 홀 연속 버디를 적어내며 선두 추격 속도를 올렸다. 7언더파. 엎치락 뒤치락 시소게임을 벌이던 선두그룹 저스틴 토머스(미국)와 아니르반 라히리(인도), 스콧 브라운(미국)과는 2타 차까지 좁혔다. 7타까지 벌어졌더 경기 초반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었다. 아이언 샷이 홀 1~2m 근처에 잘 떨어지며 버디사냥이 손쉬웠다.
뒤집기 우승 기대감이 커지던 13번 홀(파3) 티샷이 문제였다. 왼쪽 벙커 경사면 러프에 박힌 공을 그린으로 떠내려다 두 번이나 헛 스윙을 한 것이다. 네 번째 샷만에 공을 그린에 올린 그는 2퍼트로 결국 이날 두 번째 트리플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동력을 잃은 안병훈은 이후 버디 1개, 보기 1개를 맞바꾸며 최종합계 4언더파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두 선수의 생애 첫 PGA 우승도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안병훈은 유럽투어 성적 상위자 자격으로 지난 시즌부터 PGA 투어에서 뛰고 있다. 안병훈 역시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다.
서귀포=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퍼팅 브레이크까지 바꿔놨다”(저스틴 토머스)
제주 바람은 파도같다. 결을 지니지 않고 뭉쳤다가 일쑤 흩어진다. 바람의 통로가 있는 긴 편백나무 숲 사이 어디든 헤집고 다녀 방향을 알 수 없다. 김시우(22·CJ대한통운)는 “낮은 바람이 빗자루처럼 그린을 쓸고다녀 퍼트와 어프로치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깃대 잠잠해도 상공엔 돌풍
22일 제주 서귀포시의 클럽나인브릿지(파72·7196야드)에서 막을 내린 국내 최초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정규대회 CJ컵 나인브릿지 대회(총상금 925만달러)도 그랬다. 선수들의 샷은 터무니없이 길거나 짧았다. 100야드 안팎에서 1~2m 반경에 공을 쉽게 떨구는 세계 최고의 샷 고수들이 제주의 미스테리 바람에 쩔쩔맸다.
17번 홀(파3·195야드)이 대표적이다. 김민휘(25)의 아이언샷은 완벽했다. 하지만 공은 그린 20m 앞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김민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하지만 그만의 실수가 아니었다. 마크 리시먼(호주), 스콧 브라운(미국),토머스(미국)도 똑같이 짧았다. 모두 보기를 적어냈다. 셋 모두 아이언샷 그린 적중률 80%안팎을 자랑하는 아이언 달인들이다. 김민휘는 “그린 위 상공에 바람이 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선수들은 1m도 채 안되는 짧은 퍼트에서도 그린의 고유 굴곡인 한라산 브레이크와 바람의 결을 함께 읽어내느라 보통 15분 정도인 한 홀을 끝내는데 20분을 이상을 써야 했다.
◆초특급 장타자 토머스,최후의 승자로
가혹한 자연을 뚫어낸 주인공은 ‘1000만달러의 사나이’ 저스틴 토머스(미국)였다.
그는 이날 버디 4개,보기 2개,더블 보기 1개를 묶어 이븐파 72타를 쳤다.최종합계 9언더파 279타를 친 토머스는 이날 2타를 줄여내 동타를 적어낸 호주의 마크 리시먼을 2홀까지 가는 연장혈투 끝에 꺾었다. 시즌 첫 승이자 통산 7승째다. 우승상금 166만5000달러(약 19억원)도 그의 몫이 됐다.
18번 홀에서 열린 연장 첫 홀은 무승부로 끝났다. 티샷이 오른쪽으로 크게 밀리면서 위기를 맞은 리시먼은 빽빽한 나무 숲 사이로 공을 빼내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한 뒤 세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려 파를 잡아냈다. 토머스의 세 번째 샷은 그린과 벙커 경계선 둔덕에 맞고 벙커에 떨어졌지만 정교한 벙커샷을 활용해 2퍼트 파세이브를 했다.
‘우드 대결’로 펼쳐진 연장 두 번째 홀은 싱겁게 끝이 났다. 2온을 노린 리시먼의 우드 샷이 오른쪽으로 크게 밀리면서 해저드에 빠진 것이다. 승부사 토머스의 ‘닥공(닥치고 공격)’이 이 때 빛을 발했다. 5번 우드를 빼든 그는 그린 앞 5m지점의 프린지로 정확히 공을 떨궈 2퍼트 버디로 승부를 확정지었다. 네 번째 샷만에 그린에 공을 올린 리시먼은 더블 보기로 다잡았던 통산 4승째를 눈앞에서 날렸다. 2015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잭 존슨(미국)에게 연장 패배 경험이 있던 리시먼의 두번 째 연장패다.
◆K골프 자존심 살린 92년생 동갑내기
K골프의 초대챔피언 등극은 실패로 끝났다. 1992년생 ‘동갑내기’ 김민휘(25)와 안병훈(25·CJ대한통운)은 막판까지 뒤집기 한판을 노리며 분전했다. 선두와 타수 차가 컸다. 각각 단독 4위, 공동 11위로 고국 팬들 앞에서 맞이한 국내 첫 PGA 대회를 아쉽게 마감했다.
김민휘는 이날 버디 6개를 잡아냈다. 첫날부터 이어진 빼어난 샷감과 퍼트감이다. 하지만 전날보다 한 층 거세진 바람에 발목이 잡히며 더블 보기 1개,보 기 4개를 내줘 이븐파 72타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나흘내내 타수를 잃지 않은 꾸준한 경기력이다.
전날 3라운드를 6언더파 공동 5위로 끝내 역전 우승 기대감을 높였던 김민휘의 전반은 좋았다. 첫 홀을 칩샷 버디로 장식한 그는 2번 홀에서 보기 하나를 내줬지만 다시 3번 홀에서 버디를 뽑아내 언더파를 이어갔다. 이후 타수를 지키기 위한 분투가 시작됐다. 6번, 7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내주며 집중력을 잃는 듯하던 그는 8번, 9번 홀에서 잇달아 버디를 골라내며 1언더파로 전반을 마쳤다. 위기가 닥친 홀은 후반 첫 홀인 10번 홀. 티샷이 밀리면서 더블 보기를 범했다. 하지만 더이상의 흔들림은 없었다. 17번 홀(파3) 에서 티샷을 벙커에 빠트린 탓에 보기 한 개를 내준 것을 제외하고는 14번, 18번홀에서 두 개의 버디를 잡아내 ‘지키는 골프’를 완성했다. 2014년 PGA에 데뷔한 김민휘가 지금까지 기록한 가장 좋은 성적은 준우승이다.
전날까지 5언더파 공동 8위를 달렸던 안병훈은 이날 트리플 보기로 3타를 까먹으며 실망스럽게 출발했다. 아이언 티샷이 밀리면서 오른쪽 오비 구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18홀 중 2개밖에 되지 않는 오비구역으로 하필 공이 들어가고 말았다. 마음을 비운 홀가분함 덕분일까. 이후 집중력이 빛나기 시작했다.
2번, 3번, 4번홀을 파로 지켜내며 기회를 엿본 그는 5번 홀부터 7번홀까지 세 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첫 홀의 악몽을 떨쳐냈다. 원점으로 상황을 돌린 그는 8번, 9번홀에서 파 행진을 벌인 뒤 10번,11번홀에서 두 홀 연속 버디를 적어내며 선두 추격 속도를 올렸다. 7언더파. 엎치락 뒤치락 시소게임을 벌이던 선두그룹 저스틴 토머스(미국)와 아니르반 라히리(인도), 스콧 브라운(미국)과는 2타 차까지 좁혔다. 7타까지 벌어졌더 경기 초반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었다. 아이언 샷이 홀 1~2m 근처에 잘 떨어지며 버디사냥이 손쉬웠다.
뒤집기 우승 기대감이 커지던 13번 홀(파3) 티샷이 문제였다. 왼쪽 벙커 경사면 러프에 박힌 공을 그린으로 떠내려다 두 번이나 헛 스윙을 한 것이다. 네 번째 샷만에 공을 그린에 올린 그는 2퍼트로 결국 이날 두 번째 트리플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동력을 잃은 안병훈은 이후 버디 1개, 보기 1개를 맞바꾸며 최종합계 4언더파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두 선수의 생애 첫 PGA 우승도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안병훈은 유럽투어 성적 상위자 자격으로 지난 시즌부터 PGA 투어에서 뛰고 있다. 안병훈 역시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다.
서귀포=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