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해외 투자은행(IB)들이 발굴한 혁신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왜 우리 증권사들은 하지 못하고 있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규제의 개혁 및 철폐가 필요합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사진)은 23일 '증권사의 국내외 균형발전방안'을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

증권사 국내외 균형발전 방안은 금융투자협회가 '국내 증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과 지난해 말부터 10개월여간 논의해 도출한 결과다.

핵심 주제는 '해외 IB와의 경쟁력 격차 해소 방안''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역할 재정립 방안'으로, 총 100대 과제가 도출됐다.

급투협은 우선·중점적으로 추진할 '30대 핵심과제'를 선정하고 법령·규정 등 제도 개선이 서둘러 뒷받침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전과제는 △혁신성장 및 일자리 창출 △기업금융 기능 강화(기업활동 지원) △가계 자산관리 전문성 제고 △금융환경 변화 선도(글로벌화) 등 4가지로 나눠 제시됐다.

협회는 먼저 '혁신성장 및 일자리 창출 지원'을 위해 모험자본의 투자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사모시장과 전문투자자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사모 판단 기준을 현행 '청약 권유자 수'에서 '실제 청약자 수'로 개편해 사모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전문투자자에는 전문성 있는 개인투자자가 포함돼야 한다고 봤다.

황영기 회장은 "시장이 보호해야 할 개인투자자에 대해 명확히 기준을 정립해 보호해야 한다"며 "전문성 있는 개인들은 산업에 참여해 시장 발전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기업들의 성장을 위해선 중장기 자금조달이 가능하도록 기업공개(IPO)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증권사들이 5% 이상 지분 투자한 비상장기업에 대해 (단독)상장주관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업무의 연속성을 강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신성장기업의 IPO시 수요예측 이전에 기관투자자 등에 물량을 우선배정해 가격발견 기능을 제고하는 '코너스톤 인베스터(초석투자자)'제도 도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아울러 비상장 기업에 대해 소액주주의 주식 거래에 대한 양도세 면제를 추진하고, 신성장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컨버터블노트(약정시점에 주식전환 또는 원금상환을 받는 방식), SAFE(향후 지분제공을 위한 간편화된 계약으로 채무적 성격이 없는 전환증권) 등도 도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증권사들의 기업금융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전문가의 육성이 필요하다는 방안이 제시된 점이다.

협회는 "일정요건을 갖춘 산업전문가들에 대해선 차이니즈월(정보교류차단장치)에서 자유로운 직능(Free Role)으로 분류해 운영을 추진하겠다"며 "다만 이해상충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에서 준법감시인 등을 통해 사후 감독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자본시장 내 가치평가 자율화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이에 유상증자 발행가격 산정 자율화, 인수합병(M&A) 대상 기업의 합병가액 산정 자율화 등에 있어 경직된 규제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황 회장은 "상장기업의 합병가액 산정이 법으로 정해진 나라는 우리 뿐"이라며 "법령을 통해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자율화하고 외부평가 제도 실질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기업금융, 사모시장 등 특화된 업무에 전문화 된 증권사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현재의 중기특화 증권회사 제도는 차이니즈월 규제와 기업지원 수단 부족 등으로 인해 역할이 미미하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협회는 가계의 재산형성과 노후자금 지원 등에도 팔을 걷어 부쳤다. 가계의 재산 형성을 위해 다양한 목적형 종합자산관리저축계좌(ISA)를 도입하고 고령층·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비과세 종합저축계좌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것이다. 퇴직연금에 대해선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및 '디폴트 옵션'제도를 도입해 근로자의 장기간 자산관리를 지원해주는 도구로 삼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로보 어드바이저 활용을 강화한 '비대면 일임 계약' 전면 허용, 가계대출채권 기초 유동화 증권 발행 활성화 등의 방안도 포함됐다.

협회는 금융환경 변화를 선도하고 글로벌화에 발 맞추기 위해선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자본시장법 규제체계를 증권사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원칙중심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회는 이를 위해 증권사가 주식·파생시장에서 시장 조성자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레버리지비율 규제 완화, 외화증권 의무예탁제도의 개편, 외국기업의 국내 채권발행 활성화, 파생상품 진입제한 해소 및 파생상품의 다양화 등도 제안했다

황 회장은 "그간의 자본시장 활성화 노력에서 불구하고 국내 금융시장은 여전히 은행산업 중심의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며 "협회가 제시한 증권사의 발전방향을 통해 모험자본 공급을 자본시장이 주도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정부 등과 협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협회는 제시한 30대 핵심과제 중 추가 연구가 필요한 과제에 대해선 연구용역을 수행해 전략적인 추진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