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탈원전 로드맵' 확신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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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위원회 권고 '급격한 탈원전' 아닌
'점진적 원전 비중 축소'로 해석해야
전력수급 무너지면 단기 대응 불가능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점진적 원전 비중 축소'로 해석해야
전력수급 무너지면 단기 대응 불가능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정부의 탈(脫)원전 로드맵은 신규 원전 건설과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금지한다는 게 골자다. 그렇게 해서 원전은 현재 24기에서 2038년 14기로 줄이고, 줄인 만큼은 신재생에너지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간단하다. 하지만 그건 생각대로 됐을 때 얘기다. 문제는 그렇지 않을 경우다. 수요 예측은 틀렸고, 공급은 계획처럼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수요 예측부터 들여다보자. 얼마 전 공개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의 2030년 수요 전망은 101.9GW로 7차 계획 때보다 11.3GW나 낮아졌다. 원전 11기 분량이다. 전력 적정예비율은 22%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다. 원전 2기 분량이다. 수요는 과다하게 예측된 부분이 있어서, 예비율은 지나치게 높아 낮췄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날개를 달아준 숫자들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수급 전망에 5~7년을 주기로 과잉과 부족을 되풀이해온 것이 한국의 전력 사정이다. 수요 예측을 무시하고 발전소 건설을 등한시한 탓에 벌어진 일이 2011년 ‘9·15 블랙아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책을 이명박 정부가 뒤집어쓴 바로 그 사건이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은 반영돼 있지 않다. 획기적인 에너지 절감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일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와 무선네트워크 기술의 활용 증가는 폭발적이다. 4차 산업혁명이 ‘전기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변수를 감안하지 않고 낮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을 최대 변수로 삼은 것이 8차 계획 초안이다.
공급 측면은 어떨까. 일단 열악한 현실이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7%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폐기물이나 바이오에너지 발전까지 포함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인정하는 비중은 1% 남짓이다.
물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서 2030년 비중을 목표처럼 20%로 높이면 된다. 가능할까. 80조원으로 추산되는 투자비도 터무니없지만 기본적으로 부지부터 문제다. 1GW의 전력을 생산하려면 원전은 여의도 면적의 20%만 있으면 되지만 태양광은 15배, 풍력은 70배가 필요하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태양광으로는 서울 면적의 절반, 풍력으로는 2배에 가까운 땅이 필요하다.
기후 조건도 열악하다. 긴 장마와 미세먼지 탓에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연평균 일조량은 호주의 절반, 미국의 3분의 2에 불과하다. 풍력 발전이 되려면 연평균 풍속이 적어도 시속 5m는 넘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입지가 거의 없다. 이런 조건에서도 목표를 이루려면 아마 전 국토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발전소 건설도 만만치 않다. 지역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반발 탓이다. 신재생 발전소가 오히려 환경을 훼손하고 생활에 불편만 야기할 뿐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육지고, 산지고, 해상이고 할 것 없다. 곳곳이 갈등투성이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 덕분에 발전만 하면 돈을 번다는 신재생에너지다. 그런데도 2010년 이후 허가를 받은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가운데 실제 가동 중인 용량은 12% 수준에 불과하다. 무슨 뜻이겠는가.
게다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설비 비중이 15%를 넘어가면 전력계통에 악영향을 미친다. 해가 떠 있고 바람이 있을 때만 가동할 수 있는 ‘파트타임 발전’인 탓이다. 기저발전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보조 전원이다. 예비 화석연료 발전소 증설이 필요하다. 비효율이다.
원전 사고를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탈원전 정책에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고 대형 선박에 불이 날지 모르니 엔진을 끄고 돛을 달자는 정책에 마냥 동의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부는 공론화위원회 권고를 급격한 탈원전으로 받아들였다. 로드맵이 그 결과다. 하지만 공론화위원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들의 권고는 아마도 원전 비중의 점진적인 축소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권고했을 리 없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에너지 계획, 특히 전력 문제는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전력수급이 무너지면 단기 대응은 불가능하다. 오랜 경험에서 얻은 상식이다.
전기료 상승이나 전력 부족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 차기나 차차기 정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책임은 뒤로 넘어가게 됐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수요 예측부터 들여다보자. 얼마 전 공개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의 2030년 수요 전망은 101.9GW로 7차 계획 때보다 11.3GW나 낮아졌다. 원전 11기 분량이다. 전력 적정예비율은 22%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다. 원전 2기 분량이다. 수요는 과다하게 예측된 부분이 있어서, 예비율은 지나치게 높아 낮췄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날개를 달아준 숫자들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수급 전망에 5~7년을 주기로 과잉과 부족을 되풀이해온 것이 한국의 전력 사정이다. 수요 예측을 무시하고 발전소 건설을 등한시한 탓에 벌어진 일이 2011년 ‘9·15 블랙아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책을 이명박 정부가 뒤집어쓴 바로 그 사건이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은 반영돼 있지 않다. 획기적인 에너지 절감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일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와 무선네트워크 기술의 활용 증가는 폭발적이다. 4차 산업혁명이 ‘전기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변수를 감안하지 않고 낮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을 최대 변수로 삼은 것이 8차 계획 초안이다.
공급 측면은 어떨까. 일단 열악한 현실이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7%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폐기물이나 바이오에너지 발전까지 포함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인정하는 비중은 1% 남짓이다.
물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서 2030년 비중을 목표처럼 20%로 높이면 된다. 가능할까. 80조원으로 추산되는 투자비도 터무니없지만 기본적으로 부지부터 문제다. 1GW의 전력을 생산하려면 원전은 여의도 면적의 20%만 있으면 되지만 태양광은 15배, 풍력은 70배가 필요하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태양광으로는 서울 면적의 절반, 풍력으로는 2배에 가까운 땅이 필요하다.
기후 조건도 열악하다. 긴 장마와 미세먼지 탓에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연평균 일조량은 호주의 절반, 미국의 3분의 2에 불과하다. 풍력 발전이 되려면 연평균 풍속이 적어도 시속 5m는 넘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입지가 거의 없다. 이런 조건에서도 목표를 이루려면 아마 전 국토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발전소 건설도 만만치 않다. 지역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반발 탓이다. 신재생 발전소가 오히려 환경을 훼손하고 생활에 불편만 야기할 뿐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육지고, 산지고, 해상이고 할 것 없다. 곳곳이 갈등투성이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 덕분에 발전만 하면 돈을 번다는 신재생에너지다. 그런데도 2010년 이후 허가를 받은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가운데 실제 가동 중인 용량은 12% 수준에 불과하다. 무슨 뜻이겠는가.
게다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설비 비중이 15%를 넘어가면 전력계통에 악영향을 미친다. 해가 떠 있고 바람이 있을 때만 가동할 수 있는 ‘파트타임 발전’인 탓이다. 기저발전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보조 전원이다. 예비 화석연료 발전소 증설이 필요하다. 비효율이다.
원전 사고를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탈원전 정책에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고 대형 선박에 불이 날지 모르니 엔진을 끄고 돛을 달자는 정책에 마냥 동의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부는 공론화위원회 권고를 급격한 탈원전으로 받아들였다. 로드맵이 그 결과다. 하지만 공론화위원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들의 권고는 아마도 원전 비중의 점진적인 축소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권고했을 리 없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에너지 계획, 특히 전력 문제는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전력수급이 무너지면 단기 대응은 불가능하다. 오랜 경험에서 얻은 상식이다.
전기료 상승이나 전력 부족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 차기나 차차기 정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책임은 뒤로 넘어가게 됐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