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은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아마존이 모든 시장을 독점하진 못할 것”이라며 “아마존이 의류 제품 제조를 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마존이 의류사업을 대폭 확대하는 것에 경계감을 나타낸 것이란 해석이다. 유니클로 자라 H&M 등 패스트패션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의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유통 공룡 아마존이 기존 패스트패션 시장을 겨냥하고 나섰을 뿐 아니라 품질과 개성을 중시하는 ‘슬로 패션’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도 위협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아마존은 패션사업 규모는 크지 않다. 지난해 의류 온라인 매출은 2400만달러(약 271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성장세는 가파르다. 2015년에 비해 6배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유니클로 매출은 5.8%, H&M은 6.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아마존은 올 들어서도 다양한 패션 사업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자체 스포츠웨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대만의 마카롯 인더스트리를 통해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마카롯 인더스트리는 유니클로, 갭 등 패스트패션 브랜드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공장이다. 이곳에서 가성비 높은 스포츠웨어를 제작해 아마존에서 판매하기 시작하면 파급력이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마존은 또 나이키, 룰루레몬, 언더아머 등 유명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대만의 에클라 텍스타일과도 계약 체결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은 2014년 12월 ‘엘리멘츠’라는 유아용 기저귀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처음으로 자체브랜드(PB)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후 욕실용품 브랜드 ‘핀존’과 의류 브랜드 ‘라크&로’ ‘노던일레븐’ ‘프랭클린&프리맨’ 등을 잇달아 내놨다. 남성복과 여성복, 유아동복, 생활용품 등 패션업계에 본격 진출했다. 지난 7월에는 아마존 프라임 회원에게만 제공하는 프리미엄 여성 잡화 브랜드 ‘더픽스’(사진)도 내놨다. 품질은 높였지만 가격을 49~140달러(약 5만~17만원)로 책정해 경쟁력을 높였다. 패스트패션을 직접 겨냥한 가격대다.

패스트패션 기업들이 아마존을 경계하는 이유는 정보기술 인프라 때문이다. 아마존은 옷을 구입하기 전에 미리 입어보고 무료로 반품할 수 있는 ‘프라임 워드로브’ 서비스, 인공지능 카메라로 전신을 촬영한 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추천해주는 ‘에코룩’ 서비스 등을 발표했다. 유통 전문매체 리테일터치포인트는 “아마존이 손을 뻗는 영역마다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에 패션업계에서 큰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패스트패션에 대한 경고는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패스트패션에 식상해진 소비자들이 개성에 맞는 브랜드, 우수한 품질을 찾아나선 것이 원인이다.

영국 유명 백화점 존 루이스는 최근 내놓은 리테일 보고서를 통해 “패스트패션 시대의 종말이 왔다”고 분석했다. “빠르게 소비하고 버리는 시대는 갔다”는 얘기다. 패스트패션 트렌드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소비자의 인식이 확산되는 것도 그 이유다.

이 보고서는 패션시장에 대해 “예전처럼 연령대별 선호 브랜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격이 싸다고 잘 팔리는 것도 아니다”고 분석했다. 대신 오래 두고 입을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옷을 찾는다고 강조했다. 고품질의 ‘슬로패션’ 브랜드를 입는 여성이 급증하면서 ‘연령대별 선호 브랜드’ 구분도 의미가 없어졌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했다.

슬로패션에 대한 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옷장에 걸려있는 옷’을 표방하는 영국의 ‘톰 크리드랜드’, 옷감의 낭비를 막기 위해 패턴을 퍼즐 맞추듯 완벽하게 재단하는 ‘단 포’ 등이 인기를 끄는 대표적인 슬로패션 브랜드다. 톰 크리드랜드는 ‘30년 동안 입을 수 있는 트레이닝복’으로 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친환경적 브랜드인지도 소비자들이 눈여겨보는 대목이다.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덜 사고 중고품을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환경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제조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모든 소재를 재활용 원단으로 쓰는 미국의 ‘나우’도 대표적인 슬로패션 브랜드로 마니아층을 넓혀가고 있다.

패션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보는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했지만 최근엔 남들이 몰라줘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독특한 브랜드를 찾아다니는 게 트렌드가 됐다”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