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기자의 알쓸커잡] 과학경진대회 뺨치는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ㄴ자 모양의 넓은 바. 노트와 펜을 들고 눈을 부릅뜨고 앉아 있는 여러 명의 사람. 바 안에는 앞치마를 두른 바리스타가 홀로 서 있습니다. 그가 하는 첫마디. “음악 틀어주세요.”

2015년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BC)에서 우승자 사사 세스틱이 마지막 커피 시연을 할 때의 장면입니다. 음악이 나오자 그는 능숙한 손길로 커피를 만듭니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순간, 커피를 가는 순간에도 바에 앉은 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합니다. “50%의 자연가공 수단 메루와 50%의 워시드 카보닉 기법을 통해 블렌딩했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짐작이 가시나요.

최고의 바리스타를 가리는 바리스타챔피언십을 보고 있으면 과학경진대회나 발명왕 선발대회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들어가는 과정, 이를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 능력,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의 참신함, 결과물의 신선함과 맛까지 모두를 평가받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폴 바셋, 찰스 바빈스키 등도 모두 이 대회로 알려지게 된 사람들이지요.

커피의 세계 챔피언은 어떻게 뽑을까요. 월드커피이벤트(WCE)라는 조직이 7개 부문의 세계 대회를 엽니다. 바리스타챔피언십, 브루어스컵챔피언스비, 라테아트 챔피언십, (알코올과 배합하는) 굿스피릿챔피언십, 테이스터스 챔피언십, 로스팅챔피언십, 사이포니스트 챔피언십입니다. 한국도 이 대회에 나갈 국가대표들을 매년 선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내년 세계대회에 나갈 국가대표가 모두 결정됐습니다. 고양 킨텍스에서 있었던 이 행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두 명의 여성. 한국바리스타챔피언십 우승자 전주연 바리스타와 한국브루어스컵챔피언십 우승자 김수민 바리스타입니다.

모모커피의 전 바리스타는 초임계 이산화탄소 커피를 만들어 우승했습니다. 그는 “한 잔의 에스프레소에는 약 0.075g의 오일이 담겨 있는데, 초임계 추출기를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말라위 게이샤에 통과시켰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오일 추출을 유도했다”고 했습니다. 5년간 매년 도전한 끝에 1위 자리에 올랐지요. 지난 16년간 WBC 대회에서 여성 바리스타 우승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고, 국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6년간 단 2명만 있었을 뿐이니 커피업계에선 이들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요즘 골목마다 문을 여는 카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일하기 싫어서 그저 커피 장사나 한다”고. 그런 생각을 잠시나마 해본 적 있다면 다음달 9일부터 나흘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 가보시길 권합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이 대회에는 각국의 ‘커피 대표선수’들이 총출동해 치열한 ‘커피 올림픽’을 치릅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