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생보협회장에도 YS·DJ·참여정부 때 장관 '컴백'?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993년 재무부 이재국 사무관이었다. 당시 재무부 장관은 홍재형 전 부총리였으며,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는 과장 선배들이었다.

김용덕 前 위원장
김용덕 前 위원장
선배 관료들은 승승장구해 국책은행장·장관·부총리를 지냈다. 최 사무관도 25년이 지난 올해 금융위원장에 올랐다. 그런데 은퇴한 관료들이 최근 속속 금융협회장으로 자리잡을 태세다. 김 전 위원장은 26일 차기 손해보험협회장으로 사실상 확정됐다. 홍 전 부총리와 김 전 총재는 전국은행연합회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장관을 지낸 ‘거물’ 모피아들이 ‘컴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협회를 비롯해 최근 김인호 회장이 물러난 한국무역협회장에도 전직 장관급 관료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예전 고위 관료들의 복귀를 바라보는 시선은 금융계뿐 아니라 관가에서도 곱지 않다.

협회장 노리는 10~20년 전 장관들

손해보험협회는 이날 3차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를 열어 김용덕 전 위원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손해보험협회는 오는 31일 총회를 열어 김 후보자를 새 회장으로 공식 선임할 예정이다. 전직 장관급 관료가 손해보험협회장을 맡는 건 박봉환 전 동력자원부 장관(1989~1993년) 이후 처음이다. 이전에는 관료 출신 가운데 대개 차관급이 맡았다.

김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캠프에서 경제관료 자문그룹인 ‘10년의 힘’ 멤버로 활동했다. 행정고시 15회로 옛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건설교통부 차관을 거쳐 2007년 장관급인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냈다. 최종구 위원장(행시 25회)보다 행시 열 기수 선배다.

은행연합회도 이날 강원 평창에서 이사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출 절차를 논의했다. 차기 회장 후보로는 5~6명이 거론되고 있다. 관료 출신 중에는 김창록 전 총재와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이 후보군으로 오르내리는 가운데 홍재형 전 부총리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

세 사람은 경제관료 중에서도 ‘거물’급이다. 김 전 총재는 행시 13회, 윤 전 행장은 행시 21회다. 홍 전 부총리는 김영삼 정부 시절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까지 지냈다. 세 사람 모두 최종구 위원장보다 적게는 5년, 많게는 20년가량 선배들이다. 민간 금융회사 출신으로는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이 거론된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아직 누가 유력하다고 말할 수 없는 단계”라고 전했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공석이 된 무역협회장에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의 이름이 나온다. 전 전 원장은 행시 4회로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 감사원장 등을 지낸 고위 경제관료다.

관가·금융계 “부담스럽다”

10~20년 전 장관까지 지낸 거물급 경제관료의 잇단 현업 복귀 움직임을 바라보는 관가의 시선은 따갑다. 10년 만에 진보 정권이 들어선 만큼 옛 경제관료들의 복귀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장관급 인사가 나설 자리는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더군다나 손해보험협회와 은행연합회는 금융위원회가 주요 정책 이행방안을 두고 협의해야 할 상대다. 과거 상사로 모신 선배 관료가 협회장을 맡게 되면 현직 후배 관료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예전 선배 관료들 사이에선 은퇴 후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는 자리엔 가지 않는다는 그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며 “지금 장관보다 한참 선배인 분들이 꼭 협회장을 맡아야 하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협회와 금융업계에서도 마냥 반기는 눈치는 아니다. 과거 협회장 중에 관료 출신이 많았지만 장관까지 지낸 고위 관료는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한 금융협회 관계자는 “협회로서야 힘센 분이 오면 좋지만 너무 거물급이 오면 ‘상전’으로 모셔야 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손해보험협회와 은행연합회에 이어 조만간 나올 차기 생명보험협회장 후보군에도 전직 고위 관료들이 대거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태명/박신영/안상미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