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 가는 곳마다 '풍선 부대'… "나훈아 잇는 '트로트 황제' 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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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트로트로 4050 '여심 저격'
아이돌급 팬덤 날개 달아
아이돌급 팬덤 날개 달아
트로트 가수 신유(35·사진)가 무대에 서면 객석은 핑크색 풍선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40대 이상 주부 팬들이 마치 아이돌 그룹을 응원하듯 풍선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팬클럽 회원만 1만 명이 넘는다. 국내뿐만 아니다. 일본 팬까지 풍선을 들고 바다를 건너온다. 전국 각지를 누비며 노래하는 신유 곁에는 늘 핑크색 ‘풍선 부대’가 함께한다. 아이돌급 ‘팬덤’을 장착하며 가장 ‘핫한’ 남자 트로트 가수로 떠오른 신유가 한경텐아시아를 찾아왔다.
“바쁠 땐 한 달에 60개가 넘는 무대에 섭니다. 2~3년 전에는 하루에 5~6개씩 행사를 뛰었어요. 하루 1000㎞를 이동한 적도 있었죠. 요즘에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하하. 많은 분들이 지방 행사장까지 찾아와주시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입니다.”
신유는 2008년 발매한 1집 앨범 ‘럭셔리 트로트 오브 신유(Luxury Trot Of shin Yu)’의 타이틀곡 ‘잠자는 공주’로 트로트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잠자는 공주’ 외에 ‘시계바늘’ ‘일소일소 일노일노’ 등 다양한 히트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가요계에서는 나훈아 남진 태진아 설운도를 잇는 ‘대어(大魚)’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행사의 황제’로까지 불린다. 신유는 “트로트로 1등을 하고 싶다. 나훈아 선배님을 레전드라고 하듯이 나도 트로트 가수로서 그렇게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처음부터 꽃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교생 때까지 축구 선수로 뛰었던 신유는 열여덟 살이던 2000년 발라드 가수로 데뷔했다. SBS 드라마 ‘승부사’의 OST ‘약속’이 데뷔곡이다. 이후 연예기획사에 들어갔지만 5년 동안 발만 묶인 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했다. 20대 중반이 된 그는 고심 끝에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고민하던 그에게 트로트 가수인 아버지(신웅)가 손을 내밀었다. “너에게는 ‘뽕필(트로트 감각)’이 있다”며 트로트 가수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정말 싫었습니다. 차라리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장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가족들의 격려로 마음을 잡았고, 1년 넘게 아버지와 함께 발성부터 창법, 감성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노래 연습을 했어요. ‘이거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간절함이 컸으니까요.”
데뷔하자마자 트로트계의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은 건 이런 준비와 연습의 결과였다. 신유가 부른 곡의 90%가량은 아버지 신웅 씨가 작곡했다. 신유의 음색, 감성, 장단점 등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신유는 ‘세미 트로트’를 추구하는 요즘 젊은 가수들과 달리 ‘정통 트로트’를 지향한다. 그는 “평생 트로트를 불러온 대선배들 앞에서 제 노래를 ‘정통’이라고 감히 얘기할 순 없다”면서도 “정통 트로트 가수의 맥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침체된 트로트의 부흥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후배들이 생기면서 어쩌다 보니 중견 아닌 중견처럼 됐어요. 그런데 나 혼자만 잘되면 트로트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젊은 가수들이 계속 풀어야 할 숙제예요. 그래서 의상부터 무대까지 후배들에게 조언을 많이 해줍니다. 트로트 발전을 위해 더 많은 후배가 인기를 얻고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쉴 틈 없이 공연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들진 않을까. 그는 “체력적·정신적으로 지쳤을 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가족과 팬들의 지지와 격려 덕분에 금세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앞으로 쉼 없이 노래하겠다”고 다짐했다.
치솟은 인기만큼 벌어들인 수입이 궁금했다. 그는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수입에 관여해본 적은 없다. 소속사가 가족회사여서 회사 대표인 형과 아버지기 모든 걸 관리한다”며 “열심히 뛰는 만큼 적게 벌지는 않겠죠?”라며 해맑게 웃었다. “재테크는 특별히 하지 않습니다. 적금을 넣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부모님께 맡겼죠. 오로지 무대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예요. 수입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먼저니까요.”
글=노규민/사진=조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바쁠 땐 한 달에 60개가 넘는 무대에 섭니다. 2~3년 전에는 하루에 5~6개씩 행사를 뛰었어요. 하루 1000㎞를 이동한 적도 있었죠. 요즘에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하하. 많은 분들이 지방 행사장까지 찾아와주시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입니다.”
신유는 2008년 발매한 1집 앨범 ‘럭셔리 트로트 오브 신유(Luxury Trot Of shin Yu)’의 타이틀곡 ‘잠자는 공주’로 트로트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잠자는 공주’ 외에 ‘시계바늘’ ‘일소일소 일노일노’ 등 다양한 히트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가요계에서는 나훈아 남진 태진아 설운도를 잇는 ‘대어(大魚)’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행사의 황제’로까지 불린다. 신유는 “트로트로 1등을 하고 싶다. 나훈아 선배님을 레전드라고 하듯이 나도 트로트 가수로서 그렇게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처음부터 꽃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교생 때까지 축구 선수로 뛰었던 신유는 열여덟 살이던 2000년 발라드 가수로 데뷔했다. SBS 드라마 ‘승부사’의 OST ‘약속’이 데뷔곡이다. 이후 연예기획사에 들어갔지만 5년 동안 발만 묶인 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했다. 20대 중반이 된 그는 고심 끝에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고민하던 그에게 트로트 가수인 아버지(신웅)가 손을 내밀었다. “너에게는 ‘뽕필(트로트 감각)’이 있다”며 트로트 가수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정말 싫었습니다. 차라리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장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가족들의 격려로 마음을 잡았고, 1년 넘게 아버지와 함께 발성부터 창법, 감성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노래 연습을 했어요. ‘이거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간절함이 컸으니까요.”
데뷔하자마자 트로트계의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은 건 이런 준비와 연습의 결과였다. 신유가 부른 곡의 90%가량은 아버지 신웅 씨가 작곡했다. 신유의 음색, 감성, 장단점 등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신유는 ‘세미 트로트’를 추구하는 요즘 젊은 가수들과 달리 ‘정통 트로트’를 지향한다. 그는 “평생 트로트를 불러온 대선배들 앞에서 제 노래를 ‘정통’이라고 감히 얘기할 순 없다”면서도 “정통 트로트 가수의 맥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침체된 트로트의 부흥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후배들이 생기면서 어쩌다 보니 중견 아닌 중견처럼 됐어요. 그런데 나 혼자만 잘되면 트로트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젊은 가수들이 계속 풀어야 할 숙제예요. 그래서 의상부터 무대까지 후배들에게 조언을 많이 해줍니다. 트로트 발전을 위해 더 많은 후배가 인기를 얻고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쉴 틈 없이 공연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들진 않을까. 그는 “체력적·정신적으로 지쳤을 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가족과 팬들의 지지와 격려 덕분에 금세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앞으로 쉼 없이 노래하겠다”고 다짐했다.
치솟은 인기만큼 벌어들인 수입이 궁금했다. 그는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수입에 관여해본 적은 없다. 소속사가 가족회사여서 회사 대표인 형과 아버지기 모든 걸 관리한다”며 “열심히 뛰는 만큼 적게 벌지는 않겠죠?”라며 해맑게 웃었다. “재테크는 특별히 하지 않습니다. 적금을 넣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부모님께 맡겼죠. 오로지 무대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예요. 수입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먼저니까요.”
글=노규민/사진=조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