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가 올 3분기에 4000억원을 웃도는 영업적자를 냈다. 분기 기준 적자는 2007년 3분기 이후 10년 만이다. 6년을 끌어온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지난 8월 패소하면서 1조원에 가까운 충당금을 회계장부에 반영한 탓이다.

기아차는 올 3분기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손실이 각각 14조1077억원, 427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27일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이 11.1% 늘었는데도 영업이익은 2007년 3분기(-1165억원)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통상임금 패소로 9777억원의 충당금을 쌓았기 때문이다.
기아차, 10년 만에 적자… 통상임금 패소 '1조 후폭풍'
한천수 기아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전체 충당금 9777억원 중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에 8640억원이 반영되고 나머지는 지연이자로 영업외 비용으로 잡혔다”며 “통상임금 소송 패소에 따른 충당금을 쌓지 않았으면 437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3분기 당기순손실도 2918억원에 달했다. 통상임금 소송 지연이자 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1조원에 가까운 ‘통상임금 쓰나미’로 기아차가 갑자기 적자 기업으로 바뀌었다.

통상임금 소송 1심 재판부는 통상임금 지급액을 4223억원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기아차의 실제 부담액은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통상임금 인정액과 법정이자뿐만 아니라 연장휴일근로, 연차수당 등의 인건비 증가액 등을 모두 포함하면서 부담이 커졌다.

기아차, 10년 만에 적자… 통상임금 패소 '1조 후폭풍'
기아차의 올 3분기 글로벌 자동차 판매 실적도 시원치 않았다. 3분기 판매량(공장출고 기준)은 69만28대로 전년 대비 0.8%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국내 공장 생산분은 내수·수출 동반 증가로 작년 3분기보다 17.9% 늘었지만, 해외 공장은 중국과 미국 시장 부진으로 판매량이 15.0% 급감했다.

올해 누적 실적(1~9월)으로 따지면 더 갑갑한 상황이다. 기아차의 올해 누적 매출은 40조53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 늘었지만, 영업이익(3598억원)과 당기순이익(8632억원)은 통상임금 후폭풍으로 각각 81.4%와 64.5% 줄었다.

같은 기간 글로벌 시장 판매량은 205만1985대로 전년 대비 6.6% 감소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현지 구매세 지원 축소 등으로 중국 판매량이 40.9% 급감한 영향이 컸다. 미국 시장에서도 주력 모델 노후화에 따른 판매 감소 및 재고 증가, 시장수요 둔화 등으로 판매량이 6.9% 줄었다.

유럽 판매량은 K5 왜건, 니로 등 신차 효과에 힘입어 8.1% 늘었다. 중남미(14.1%)와 러시아(25.4%) 등 주요 신흥 시장에선 선전했다. 국내 시장에선 판매량이 같은 기간 2.3% 감소했다.

올 1~9월 매출원가는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충당금 반영으로 작년 동기보다 6.2% 증가했다. 이에 따라 매출원가율도 83.7%로 3.5%포인트 높아졌다. 판매관리비도 통상임금 관련 비용을 반영하면서 같은 기간 5.2% 증가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재무적 불확실성이 없어지고 스팅어, 스토닉 등 주력 신차의 글로벌 판매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등 긍정적 요인도 있는 만큼 올해 남은 기간 수익성 방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임금의 피해는 단순히 기아차 실적에만 그치지 않았다. 생산체계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기아차는 지난달부터 잔업을 전면 중단하고 특별근무도 최소화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감산(減産)에 들어간 것이다. 올 들어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통상임금 소송 패소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 각종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잔업 중단과 특근 최소화로 기아차의 국내 공장 생산량은 연간 4만1000대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광주 화성 소하(광명) 등에 공장을 둔 기아차의 지난해 국내 생산량은 155만 대(위탁 생산분 포함)였다. 평균 연봉이 9700만원(작년 기준)에 달하는 기아차 근로자의 임금도 연간 200만원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협력업체들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차가 부품사들의 납품 물량을 줄이고 단가도 낮출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미 진행 중인 기업 115곳의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다른 기업 노조들의 ‘줄소송’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내 간판 기업인 기아차가 통상임금 소송에서 지면서 다른 기업 노조들이 앞다퉈 소송을 제기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장창민/강현우 기자 cmjang@hankyung.com